4 8228 3 민중항쟁의 전개 4 3항쟁의 결행 1948년 제주지역 4 3 항쟁 4월 3일 무장기습 4월 3일 무장기습 사상자 수 4 3 발발 4 3 무장대 습격 4 3 남로당 4 3 중앙당 4 3 제주도당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3.29 / 2015.03.29
  • 4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43 민중항쟁의 전개
‘4·3’, 제주도 무장대가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조국의 자주통일, 극우세력의 탄압에 대한 대항을 기치로 미
군정,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극우세력을 향해 무장항쟁을 결행했던 1948년 4월 3일...
‘43’은 당시 남한 사회의 보편적 모순 구조와 한민족을 남북으로 갈라놓은 미군정의 실책, 그리고 제주도 저항의 역사와 사회경제적 요건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 접근해야 할 것이다. 미군정 아래에서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사건으로서, 무엇보다도 무고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극을 가져다 준 사건이다.
제주도민에게 ‘4·3’은 역사책에 나오는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 형제의 처절한 죽음을 목격한 유족들에게 크고 깊은 결코 잊지 못할 한을 남겨준 사건이다. 당시 제주에서의 무차별 학살극은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더욱 깊은 산중으로 도망치게 했고, 얼어 죽지 않으려고 자연굴을 찾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로 내려와 숨겨 논 식량을 파가게 했다. 토벌대에게 걸려온 가족이 몰살당하기도 했고, 급히 숨어 혼자 구사일생 한 사람들은 가족이 총살당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숨죽여 흐느껴야만 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교전중에 숨진 무장대가 아니라 불가항력의 주민들이었다. 당시의 제주도는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시부와 며느리 간에 말 태우기, 뺨 때리기, 가족 살상 시 만세 복창하며 박수치기, 강제 성행위 등 「역사비평42호」1998년 봄호.
‘집단 광기’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1) 1948년 제주지역 상황과 43항쟁의 결행
① 제주도의 전체적인 상황 개관
1948년의 제주지역의 상황은 민중과 미군정의 갈등과 대결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 긴장은 미군정이 한 사람의 남로당 연락책(1947년 12월 중문면 강정리에서 검거)을 고문전향시켜 제주도당의 실체를 파악하여 와해시키면서 촉발된다. 미군정은 1948년 1월 22일 제주도 남로당 조천지부의 비밀회합장소를 습격하여 106명을 체포한다. 이 습격에 대한 내용은 ‘시민들의 불온(Civil Unrest)’ “……1월 22일 폭동 지령 유인물(2월 중순과 3월 5일 사이에 폭동을 일으키라는)이 발견된 공산주의자들의 불법 회합과 관련해 106명의 좌익주의자들이 체포되었다. 1월 26일까지 115명이 더 체포되었다. 221명의 체포자 가운데 63명은 경찰 심문 후 석방되었다. 그 방면자들은 남로당원들이었다. 구금자들의 정치적 성향(정당가입 여부)은 보고되지 않았다.” → 이 보고서의 내용을 놓고, 방면자는 평당원이라는 의견과 함께, 남로당은 합법정당이라고는 하였지만 그 활동에는 제한이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미군정의 무자비한 탄압과 이 탄압에 남로당 도당 조직이 대항하여 43항쟁의 결행을 결정한 ‘신촌회담’의 내용이 노출되어, 남로당의 핵심간부인 안세훈, 김유환, 이좌구, 이덕구, 김양근 등이 체포되고 김달삼과 조몽구 정도가 탈출피신하였다. 2월 7일 안덕면 사계리에서는 경찰구타사건 2월 7일, 안덕면 사계리에 순찰나갔던 안덕지서 소속 경찰관이 동네 청년들에게 뭇매를 맞고 한 명은 도망가고 또 한 명은 잡혀 모래밭에 ‘묻히다 만’ 미수사건이었다.
이 발생하였으며, 2월 91011일에 걸쳐 17차례의 시위가 벌어지고 여섯 개의 경찰서가 공격당하고, 각종 삐라가 살포되었다. 미군정과 경찰은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290여명을 체포하고 남로당 제주도 당 본부를 습격하였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최근 판매 자료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