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5.09.02 / 2019.12.24
- 6페이지 / hwp (아래아한글97)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2,900원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1
2
3
4
5
6
추천 연관자료
- 하고 싶은 말
-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서평입니다..
- 목차
-
Ⅰ. 서론
Ⅱ.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1. DNA 이중나선을 향한 경쟁
2.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삶 속에서의 탐구
3.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DNA 이중나선
Ⅲ.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서평
[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자 ]
참고문헌
- 본문내용
-
2.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삶 속에서의 탐구
비록 이중나선을 향한 경쟁에서 정당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했지만, 프랭클린은 여전히 정력적으로 연구했다. 버크벡칼리지의 바이러스 연구팀장이었던 그녀는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으며, 미국으로부터도 강연 초청을 받았다. 미국은 그녀에게 새로운 발견이었고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다. 당시에는 이미 크릭 등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서로 자문을 구하거나 협조를 요청할 것들이 있으면 그들은 주저 없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프랭클린은 이중나선을 넘어서는 그 어떤 발견도 새롭게 해낼 것처럼 보였다. 불행의 전조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1956년 두 번째 미국 초청을 받은 때였다. 프랭클린은 2개월 동안 미국의 곳곳을 누비며 여행과 강연에 빠져들었다.
영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그녀는 갑자기 스커트의 지퍼를 올리기 힘들어졌다. 허리가 불룩 튀어나온 것이다. 종양이었다. 그래 9월 4일 수술에 들어갔을 때 더 끔찍한 결과가 나타났다. 두 개의 종양이었다. 한 달 후 프랭클린은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고 더 이상의 암은 발견되지 않았다. 프랭클린은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믿었고, 예전만큼 어쩌면 전보다 더 정력적으로 연구했다. 그녀는 사실상 ‘죽기에는 너무 바빴다.’ 새롭게 소아마비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1956년에만 일곱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1957년에는 여섯 편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과 상관없이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갔다. 1957년 몇 달 동안 그녀는 반나절밖에 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그녀가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치료를 받는 시간을 제외하면 연구와 학회 참석 등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언제나 건강하고 꼿꼿한 자세로 임했다. 하지만 1958년이 되었을 때 프랭클린의 몸에서는 새로운 혹이 드러났다. 암세포가 전이되고 있었다. 화학요법에 방사능 요법까지 동원되었지만 다가오는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1959년 그녀는 거의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렸지만, X선 기구가 있는 지하층에서 사무실이 있는 위층까지 가려면 거의 계단을 기어가다시피 했다. 그해 3월 말 그녀는 마침내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 참고문헌
-
1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브렌다 매독스 지음 나도선, 진우기 옮김 양문출판사
자료평가
-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