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종묘사직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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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경복궁과 종묘와 사직을 답사하고 나서 감상을 적어보았습니다. ^^
본문내용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왕비전과 세자가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던 비현각, 경회루, 그리고 문무백관의 조하를 비롯한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왕이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근정전이다. 먼저 왕비전, 역시 조선시대의 국모가 거처하던 곳이라서 그런지 건물부터가 후궁들의 거처와는 달리 크고 웅장한 기상이 느껴졌다. 아쉬웠던 것은 궁 내부가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 비현각이나 다른 후궁들의 방은 창문을 열어놓아 공개가 되어있었는데 왕비전은 그렇지가 않았다.
비현각에 가서 방 내부를 보았는데, 마치 세자가 방석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 듯했다. 공부방에는 책상과 방석, 병풍, 촛대 등이 있었다.
또한 궁내에 있는 경회루의 전경이 아름다웠다. 궁 안에서의 꽉 막힌 생활에 활기를 제공해 주는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궁 안의 사람들은 이 곳 경회루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가슴의 답답함을 털어내곤 했을 것이다. 경회루는 궁 안에서 은밀하게 데이트를 하는 낭만적인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궁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낭만적인 장소 중 유일한 곳은 이곳 경회루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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