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근대사]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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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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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마키아벨리인가
2.마키아벨리와 피렌체
3. 마키아벨리의 저작
4. 마키아벨리의 평가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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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마키아벨리인가
500여 년 전에 쓰인 마키아벨리의 저작 『군주론』은 근대 이후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중세의 근대의 사이의 혼란기에 살았으며, 종교와 도덕, 예의를 중요시했던 시기에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비도덕적인 일도 필요악으로 할 필요가 있고, 강력한 독재자가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도덕보다는 이성에 근거해서 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가자던 그의 논리는 중세의 논리보다는 계몽주의 등 합리성을 중시했던 근대인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며, 중세가 끝나는 지점에서 활약했던 그의 모습은 근대가 시작됨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남겨주었다.
이 글에서는 마키아벨리의 인생을 당시 피렌체의 상황과 결부시켜 따라가면서 살펴보고 『군주론』등 마키아벨리의 저작의 근원에 대해서 알아봄으로써 근대인으로서의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조명해보도록 하겠다.
2.마키아벨리와 피렌체
니콜로 마키아벨리(Machiavelli, Niccolo di Bernardo dei)는 1469년 5월 3일 피렌체 시내에서 태어났다. 마키아벨리의 아버지인 베르나르도 마키아벨리의 직업은 평범한 법률고문이었다. 집안은 중류층이었지만 책을 모으는 것을 취미로 삼은 아버지와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마키아벨리는 대체적으로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1469년은 피렌체에 있어서도 중요한 년도였다. 공화정이었던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배가문이었던 메디치가의 당주였던 20살의 로렌초가 정권을 잡은 해였기 때문이다. 로렌초 데 메디치는 이후 몇 번의 암살과 실각 기도를 잘 막으면서 1492년 사망할 때까지 큰 문제없이 피렌체의 문화를 발전시켜간다. 1492년 로렌초가 사망하고 메디치가의 실질적 후원자였던 교황 인노켄티우스8세가 사망하면서 피렌체의 운명은 급변하게 되는데, 로렌초 데 메디치의 큰아들로써 정권을 잡았던 피에로 데 메디치는 실정을 거듭했고, 이탈리아를 노리고 있던 프랑스의 샤를8세가 나폴리 왕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이탈리아를 침공한 것과 알렉산드르6세의 교황 취임, 사보나롤라의 인기 등의 사건으로 메디치 가문은 1494년 피렌체에서 쫓겨나게 된다. 피렌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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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1996년. 한길사
틴 스키너 외, 『마키아벨리의 이해』1993년. 문학과 지성사
로베르트 리돌피, 『마키아벨리 평전』 2000년. 아카넷
조지 세이빈. 토머스 솔슨 『정치사상사』 1983년.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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