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론, 감상문] 몽양 여운형 평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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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09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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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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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론 과제물로 했던 레포트입니다.
책의 내용을 자세하게 리한 감상문입니다.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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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 평전을 읽고
시작하면서
본론
1. 몽양의 생애
2. 진보적 민족주의자 · 민주주의자인 혁명가
1) 해방 전 시기 - 일본에 대한 반항적 투쟁
2) 해방 전야
3) 해방 후 시기 - 미국인에 대한 민족적 자존심의 투쟁
4) 여운형에 대한 평가와 한계
끝맺는 말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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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1. 몽양의 생애
몽양 여운형이 살다 간 61년의 세월은 조선민족 근현대사에서 망국-식민-분단의 시작이라는 비운의 소용돌이 한복판이었다. 여운형은 1886년 4월 22일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는 특히 양반에 의한 하인들의 천대와 억눌림에 대해서 동정적이었다. 이런 면에서, 봉건적 계급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에게 있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판단된다.
14세에 처음 서양 문물을 접한 여운형은 조선보다 훨씬 앞서있는 서양문화를 깨달았고, 청년시기에는 서양의 신사조와 문물을 전파하는 기독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를 통한 애국계몽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도산 안창호의 연설 ‘대한의 장래’를 들은 이후에는 그것에 감명을 받아 장차 저런 애국자가 되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눈여겨볼 점은, 여운형이 행한 ‘가풍(家風)의 일대 혁신’이다. 부친상을 치르고 난 후, 그는 손수 가위로 자신의 상투를 자르고 집안에 모신 역대 신주를 땅 속에 묻었다. 또한 종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그들 앞에서 종문서를 불태웠다. 이러한 여운형의 가족적 대혁신은 낙후한 유교적 폐습에 대한 반기였으며 자유와 해방이라는 인간 본연의 자세에 대한 열망과 신념의 표시였다.
1914년, 독립운동을 위해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고 그 후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여 조선 민족의 독립 염원을 세계에 선포하게 하는 등 외교적 활동을 펴는데, 이것이 3.1운동의 결정적 계기가 된다. 1919년에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며 외무위원장을 맡아 대외 선전의 주역으로 활동한다. 또한 일본 도쿄에서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일본 기자들 앞에서 역설하는 등 외교적 노선을 펼쳐나간다.
1921년 몽양은 모스크바에 가서 레닌을 만나 조선 독립을 논의한다. 레닌은, 조선이 이전에는 문화가 발달했지만 현재는 민도가 낮기 때문에 당장 공산주의를 실행하는 것이 힘들며, 지금은 민족주의를 실행하는 편이 낫다고 얘기한다. 몽양은 이에 동조했으며 또한 이를 신념으로 삼았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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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 평전, 정병준, 한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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