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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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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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문학의 사회성과 미학성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연작은 1975년 12월부터 3년여에 걸쳐 발표되었고 1978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줄곧 문학사정신사사회사에서 두루 문제작으로 논의된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시다시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난쟁이로 상징되는 못 가진 자와 거인으로 상징되는 가진 자 사이의 대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대립 속에서 난쟁이들의 불행과 비극은 비단 경제적인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살이 전면에 걸쳐진 것이었다. 그 비극적 현실은 그동안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 이 땅에서 거의 최초로 자유와 더불어 평등의 이념형을 본격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려고 허둥대던 시절에 사랑으로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희망과 해방의 조짐을 모색한 문학인 것이다. 현실을 피상적으로 관찰하지 않고 애써 심연에서의 근원적인 인식 지평에서 현실과 대결하고자 했던 작가의 긴장 어린 노고가 거기에 담겨 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현대의 살아있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그 문학성에 있었을 것이다. 그의 치열한 현실 인식이 도저한 문학적 실험 정신과 어우러져 과연 잘 빚은 항아리 모양으로 생명의 활기를 지피고 있는 형상이다. 짧은 문장의 절묘한 결합으로 창조해 낸 아주 새로운 이야기 스타일,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의 접합, 문학의 사회성과 미학성의 결합, 현실과 이상의 산업 시대 묘사, 신화적 교감과 긴장 등등의 측면에서 작가는 나름대로 카오스모스 (chaosmos, chaos (혼돈)과 cosmo(질서)의 합성어)의 소설 시학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허위적 현실 인식을 위한 추상적 대위법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대립적 세계관에서 출발하되 그것을 혁파하고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 지평을 모색하고자 한 소설이다. 증조부가 노비였던 난쟁이는 평생을 신체적 불우와 사회적 편견, 경제적 질곡으로 인해 고통 속에서 살다 죽어 간 인물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난쟁이는 1970년대 한국사회와 경제의 생산과 소비 및 분배 구조에서 억압받은 소외 계층을 표상하는 전형적 인물이다. 마침내 산업사회의 증후가 본격화되던 당대 사회에서 자신의 난처한 경제적 토대와 세계의 타락상으로 인해 철저하게 소회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존재다. 이런 조건의 인물을 작가는‘난쟁이’라는 신체적 불구성에 빗대어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난쟁이’의 저편에는 상대적으로 불구성을 내포하고 있는‘거인’이 놓인다. 조세희가 상징적으로 시도한 바‘난쟁이-거인’이라는 대립축의 패러다임을 「환경 파괴」등의 글에 제시된 작가의 주석적 진술을 토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현상적으로 보아 ‘못 가진 자 - 가진 자’의 대립을 비롯하여, ‘빈곤 - 풍요, 고통 - 안락, 분노-사랑의 결핍, 피착취-착취, 어둠-밝음, 검정-노랑, 추움-따뜻함’ 등이 병렬적 관계를 이룬다. 이 현상적 대립항들은 사회경제적 조건 면에서 거인이 ‘+’징표를, 난쟁이가 ‘-’징표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이는 타락한 교환가치 측면에서의 징표일 따름이다. 가치 측면에서는 그 징표 체계가 역전된다.
난쟁이는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우고 싶어 했다. 반면 난쟁이의 대안에 놓이는 거인 자본가의 손자인 경훈은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고 말한다. 이 화해할 수 없는 거리의 심연, 혹은 문제적인 거리가 현상적인 징표를 역전시킨다. 즉 ‘사랑 - 사랑의 결핍, 도덕적 - 비도덕적’이라는 대립항으로 난쟁이가 ‘+’징표를, 거인이 ‘-’징표를 지닌다는 점에서 온전한 정상인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작가가 보기에 인간적인 삶은 ‘정상인’의 삶이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허위적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위해 우선 ‘-’징표를 전경화(前景化) 언어를 비일상적으로 사용하여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하는 일, 상투적인 표현을 깨트림으로써 새로운 느낌이나 지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으로 프라하 학파가 언어학과 시학에서 쓴 용어이다.
한다. 그래서 난쟁이는 끝끝내 인간의 대지에서 희망의 길을 찾지 못한다.
불구성의 증폭으로 요약될 ‘난쟁이성’은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에 나오는 수저 이미지에서 여실하게 획인 할 수 있다. 큰아들 영수의 꿈에서 “아주 큰 수저를 끌고” 가던 “작은 아버지”의 “몸은 놋수저 안에서 오므라”들고 만다. 수사학으로 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난쟁이 성의 징표라 할 만하다. 난쟁이는 사랑 없는 욕망으로 점철된 거인들의 욕망의 밥숟갈에 의해 삼킴을 당했다. 그가 꿈꾼 세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난쟁이는 자신이 사라의 삶을 회원하던 바로 그 장소(공장 굴뚝)에서 투신자살하고 만다.
난쟁이의 큰아들 영수 역시 마찬가지다. 영수의 변혁 욕망꿈희망은, 아버지의 그것이 그러했듯이,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었다. 노사 협상이 완패로 끝난 다음, 영수는 신도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이 통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 슬픔은 곧 분노와 적의로 옮겨 간다. 적의의 끝, 분노의 절정에서 영수는 자본가를 살인,사형당하고 만다. 역시 비극적인 결구로서, 끝내 난쟁이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정이 한층 심각한 것은 거인 쪽이다. 거인은 지독한 사랑의 결핍 상태에서 더더욱 비도도덕적인 살만 찌우고 있는 판이니, 그‘-’징표의 심각성을 더해 갈 뿐이다. 이 점 은강그룹 회장의 손자인 경훈의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는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성조차 할 줄 모르는 그는 죄 많은 거인 의식의 극단을 보인다. 그러니 경훈의 의식의 끝은 이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한다”,“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대표적인 ‘-’징표의 본보기다. 반성 없는 ‘-’징표는 다른 쪽의 ‘+’징표와 만날 수 없다. 난쟁이와 그의 아들이 추구하던 사랑의 세계와는 결코 조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허위적인 현실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위해 조세희는 추상적 대위법을 구성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이분법적 세계관과는 다르다. 반성하고 초극해야 하는 현실을 명료하게 인식하기 위한 방법론적 기제이기 때문이다.
대립의 초극을 위한 카오스모스
조세희는 허위적 현실 상황을 추상적 대위법의 세계로 구성하면서도, 사랑과 희망의 길을 위한 지향의식을 분명히 한다. 그 희망의 길 위에서 다시 비극의 길 혹은 허위적 현실을 거듭 만날 수밖에 없었기에 사정은 단순치 않다. 그렇지만 비극의 길과 희망의 길이 분리 대립을 일으키는 현실, 둘이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초극하고자 한 작가의 지향 의식이 전경화된다. 기존의 타락한 현실과 타락한 인식의 틀에 탈()을 내고 혼돈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사랑의 질서, 희망의 질서를 탐색하고자 한 작가의 지향 의식이 주목 된다는 것이다.
대립적 세계상을 초극하고자 한 작가의 상상적 의지, 그 초극의 지평에서 진정한 사랑의 세상을 꿈꾸었던 지향 의식, 바로 그런 것들로부터 조세희 나름의 카오스모스의 소설 시학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연작에서 굴뚝 청소부 이야기를 비롯해 ‘뫼비우스의 띠’난 ‘클라인씨의 병’모티프는 지향 의식이 리얼리티 효과를 낳는 기제들이다. 혼돈 속의 질서, 혹은 질서 속의 혼돈을 탐문하는 카오스모스적 의식이기에 이분법적 세계관의 단순성을 보완하는 기제이면서, 이 연작 전체에 복합의 미학을 부여한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확실히 그 자체로서 하나의 ‘뫼비우스 띠’같은 소설이요, ‘뫼비우스 환상곡’이다. 대단히 비극적인 산업 시대의 소외된 신화이자, 동시에 소외 초극 의지의 신화이다. 현실주의적 전망이 닫혀 있던 시대 아니 전망은 차치하고라도 현실 인식마저 미망에 휘둘려야 했던 시절, 작가 조세희는 이처럼 양가적이고 역설적인 난쟁이 신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작가의 현실 인식과 전망 추구는 1970년대 한국 작가가 감당할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고행의 결과가 아닐까 짐작한다. 신에게도 잘못이 있는 험한 세상에서, 그 특유의 사랑법에 기대어 희망의 길을 놓치지 않으려 한 작가가 바로 조세희다. ‘거인’과 ‘난쟁이’의 대립적 경계를 해체한 초극의 지평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 정녕 인간다운 삶의 공간을 꿈꾼 조세의의 소설이야 말로, 문학의 위의(威儀)와 영광을 생생하게 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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