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눈으로 본 버지니아울프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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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눈으로 본 버지니아울프의 방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중에서
내가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중의 한 소절이다. 어린시절 윤동주의 서시와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중에서 저 소절을 가장 즐겨 외우곤 했다. 하지만 난 학창시절 버지니아 울프는 그냥 박인환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 처음 버지니아 울프의 책에 대해서 읽게 되었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책은 내게 버지니아의 비극적인 삶을 알게 해준 첫 번째 책이었다. 떠돌이별 지구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군다나 그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부속되지 않은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호주머니에 잔뜩 돌을 넣고 강물에 투신하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존경해 마지않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작가인 제인 오스틴도 자기만의 방이 아니 공용 거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소설을 써야 했음은 물론 울프가 여성이 오로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경제적인 조건으로 제시한 500파운드의 돈을 소유 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물며 노동자계급의 여성들의 종속적인 삶이야 말해서 무엇 할까.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서양이든 동양이든 여성의 경제사정은 별반 나이진 것 같지 않다. 나는 매일 생각한다.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생각의 바다에 여유 있게 빠져들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어디서 어떻게 벌 수 있을까? 일 년의 반을 힘들게 일해서 단 한 달이라도 그리 살 수 있다면 그 수고로움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울프의 책을 덮으며 더욱 답답해지는 것은 평생 동안 그 수고로움을 다 하고도 한달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가질 수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에서이다.
그러나 울프가 책 말미에서 지적하듯 이런저런 방법으로 일년에 500파운드를 벌어들일 능력이 있는 여성이 이 순간에 있다면 기회와 훈련과 격려와 여가와 돈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버지니아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에서 당시의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을 의식의 흐림이라는 독특한 기법으로 거침없고 실낱 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2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버지니아의 글은 우리에게 언제나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자기만의 방을 허락해 준다.
버지니아는 여성과 픽션에 관해서 강의를 부탁 받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버지니아는 우선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1장에서 버지니아의 의식의 흐름의 기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학교를 위한 기부금을 모으는 일을 의논하면서 돈이 있었다면 여자들의 삶이 어떠했을 것인지 상상한다. 그러나 여자들이 돈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것이 가능했더라도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이 소유할 권리가 법률로 보장이 되어있지 않으니 아무 소용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버지니아는 당시 남자들만의 몫이었던 것들을 상상하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왜 우리들에게 남겨줄 돈이 없었는지, 가난이라는 것이, 부유하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고민했다. 그리고 한쪽 성의 안녕과 번영, 다른 쪽 성의 가난과 불안정에 대해, 전통 혹은 전통의 결핍이 자신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버지니아는 전체적인 글에서 화자가 자꾸 바뀌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화자는 당연히 버지니아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읽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화자는 메리 시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어느 순간에 화자가 메리 버튼으로 바뀌어 있는 식이다.
이런 식의 글은 나로서는 정말 처음 접해 보는 독특한 테크닉이었으며 책 속으로 더욱더 빠져들게 하고, 점점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읽어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성은 모든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원래 크기보다 두 배로 확대 반사시켜 주는 마술적이고도 입맛에 맞는 능력을 소유한 거울로써 이바지해왔으며 남자들이 여자들을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성들이 열등하지 않다면 자신들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전에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버지니아는 셰익스피어에게 주디스라는 재능 있는 누이동생이 있었다고 가정하고 그녀가 어떻게 살았을 지를 상상한다. 주디스는 비범한 재능을 가졌으나 그녀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몇 페이지 글을 쓰고는 아무도 모르게 태워버리곤 하다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받고 몰래 집을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결국은 자살을 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더구나 셰익스피어와 같은 천재란 고생하고 교육 받지 못하고 노예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태어날 수 없으므로 여자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재능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많은 여성들의 작품들이 생겼는데 여기서 버지니아는 그녀들의 작품들이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왜 모두 소설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버지니아는 조지 엘리어트, 에밀리 브론테, 샤로트 브론테, 제인 오스틴을 비교하면서 그녀들은 모두 아이가 없었으며 중산층에서 태어나 하나의 거실만을 두고 살았다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이런 공통점들이 그녀들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녀들은 모두 자신만의 시간을 반시간도 가질 수 없었고 늘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실에서 글을 써야 했으므로 시나 희곡을 쓰기보다는 집중력이 덜 요구되는 산문이나 소설을 쓰는 것이 더 쉬웠으리라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여성이 글을 쓰면서 겪게 된 주요한 어려움 중의 하나는 여성 작가들의 배후에는 어떠한 전통도 없었다는 것이며 있었다 해도 너무나 짧고 부분적이어서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는 두 성이 서로 협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야말로 가장 큰 만족과 행복을 향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버지니아가 말하는 양성적 존재란 우리의 각자 안에 하나는 남성이고 하나는 여성인 두 가지의 세력을 다 가진 존재를 말한다. 순수하게 남성적이거나 순전히 여성적인 마음은 창조를 할 수가 없으며 이 두 기능이 융합을 이루어야만 한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남성 작가들은 자신의 남성적인 면만을 가지고 글을 쓰기 때문에 그런 작품을 통해 여성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자신도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느새 내 속에 숨어있는 남성우월주의에 휩싸여 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여성학 강의를 듣기 전에는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를 알기 전까지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신체적 능력만으로도 남성의 모든 것-생각,사고능력,판단력,업무수행능력,이성, 심지어는 영혼까지도- 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버지니아가 전적으로 남성만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비난을 하고 싶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어느 한 성에 있지는 않다는 그녀의 말이 이를 입증한다. 버지니아는 누가 되었든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치명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남성적 여성 또는 여성적 남성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창조의 행위가 완성될 수 있기 전에, 마음에서 여성성과 남성성 간의 합작이 일어나야만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버지니아는 여성들끼리의 연대의식을 강조하면서 여성은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따로따로의 작은 삶들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 되는 공동의 삶이라고 말한다. 버지니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조건들을 제시한다. 케이트 밀레트가 여성을 억압당하고 피해만 받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버지니아는 양성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양성간의 융합을 중요시한다. 버지니아는 단순히 여성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고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문학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인다. 버지니아는 여성들이 초기에는 소설만을 쓸 수밖에 없었으나 점차 시와 희곡, 비평 등에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집중력의 차이로 구분하는 소설과 시에 대한 버지니아의 태도가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집중력이라는 이유 외에는 왜 초기의 여성들의 상황과 소설이 맞닿아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버지니아가 제시하는 경제적인 힘은 여성이 글을 쓰는 데에 뿐만 아니라 여성이 자존심을 가지고 사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나 버지니아가 이 글을 쓸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으나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정적인 수입을 누리고 있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 회의스럽다. 아니 설령 고정적인 수입을 누리고 있는 여성의 수치는 증가 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자신의 고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한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된 일임을 난 잘 알고 있다. 버지니아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수단이기도 하고 순수하게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역시 문학 작품들을 볼 때, 내용에서 읽을 수 있는 남녀간의 관계에 일차적으로 주목한다. 하지만 케이트 밀레트가 그랬던 것처럼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버지니아는 작품의 감수성이나 캐릭터, 구성 등에도 골고루 관심을 두고 자신만의 독특한 섬세함으로 우리 시대에 페미니즘이라는 생각을 던져 주었다.
이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나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버지니아, 그녀의 생애는 비극과 축복으로 극명하게 대립되는 것 같다. 이것은 특히 그녀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 남긴 유서를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다. 버지니아가 살았던 당시의 혼란스런 배경에는 오히려 그녀의 작품들은 부르주아 계급의 폐쇄적인 문학으로까지 평가하는 부류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그녀는 여성운동의 대모이며 페미니즘의 예견자로서 또한 19세기~20세기에 지구가 낳은 최고의 여성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방 책을 덮는 순간 그녀가 정신질환과 환청에 시달리며 그녀의 인생을 비관과 절망의 역사라고 평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나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를 포스트모더니즘의 휴머니티와 지극한 사랑을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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