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던 자본가들의 시초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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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산업혁명을 가능케했던 자본가들의 시초축적에 대해서.
-칼 맑스 [자본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해 더 이상 지속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칼 맑스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이미 공산주의 국가의 패망으로 오늘날 유용성을 상실한 듯 보였던 맑스의 이론이 다시 읽히고 있는 것은 그가 행한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때문일 것이다.
맑스는 [자본론] 이란 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분석했는데 자본주의가 작동하려면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본가 둘째는 풍요로운 잉여노동력 셋째는 만든 물건을 팔 시장이다. 이중 자본가와 노동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자본론 1권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지점에 대해 오늘 발표하고자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가장 큰 차이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느냐이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주는 기계를 가지고 있는 카페주인은 자본가이고 그 기계가 없어 그저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은 노동자이다. 그럼 그 카페주인은 어떻게 커피머신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일까? 아마 회사에서 일을 하다 정년퇴임을 하고 받은 돈으로 구매했을 수도 있고 사업을 해서 번 돈으로 구매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다른 것을 팔다가 카페로 업종을 바꿨을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전에도 월급쟁이가 아니었다면 뭔가 밑천이 있어야 장사를 했을텐데 그 밑천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혹은 월급쟁이였다면 그 회사의 주인은 처음 밑천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이렇게 자본가들이 태초에 어떻게 행했길래 노동자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을지 누구나 한번쯤 궁금해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제시되는 전형적인 해법은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이다. 노동자들이 배짱이처럼 노래 부르고 놀고 먹을 때 자본가는 개미처럼 열심히 근면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에 이들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것이 나중엔 눈덩이처럼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론 멀쩡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을 거주지에서 내쫓고 그곳을 자기 것으로 삼은뒤 내쫓긴 사람들을 싼 임금으로 고용하여 부를 축적했다. 이를 맑스는 영국의 역사를 통해 증명한다.
15c 영국에서는 엔클로저 운동이라는 것이 시작된다. 이는 봉건영주들이 토지에 울타리를 치고 농민들을 그 밖으로 쫓아내는 운동이었다. 당시 플랑드르 지방에서 양모 메뉴팩처가 발전하면서 양모 수요가 증가하자 양모의 가격이 급등하게 된다. 이에 따라 땅을 소유하고 있던 영주들은 그 땅에서 경작을 하는 것보다 양을 키워 거기에서 양모를 파는게 훨씬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소농민들을 경작지로부터 대대적으로 내쫓기 시작했고 그들이 살던 집을 부수고 불태워버린다. 이 현상에 대해 유토피아란 소설을 썼던 토마스 모어는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라고도 표현했다. 이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헨리 7세때부터는 반 엔클로저 입법을 하기도 했으나 실효성을 거두진 못했다. 그리고 18c에 이르러 또 한번의 엔클로저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는 소 목축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부턴 거꾸로 이를 합법화하기 위한 입법이 생겨난다. 그리하여 1801~31년 사이에 지주들로 구성된 의회는 3,511,770에이커의 토지를 농촌주민에게서 약탈하여 지주에게 나누어주었다.
동시에 16c 종교개혁과 그에 따라 교회재산을 국유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재산은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나 차지농업가, 도시 부르주아에게 헐값에 팔린다. 교회땅을 경작하던 이들은 대부분 농민들이었는데 주인이 바뀌고 나서부터는 또 다시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켈트족이란 씨족 공동체가 있었는데 이들의 땅은 명목상 씨족 대표자의 명의로 되있었다. 그런데 이 대표들이 명목상 소유권을 사적 소유권으로 전환시켰으며 씨족원들이 반항하자 이들을 폭력으로 토지에서 추방시킨다. 18c엔 스코틀랜드 고지인인 게일인들이 대부분 축출되었으며 국외로 이주하는 것 마저 금지되었는데 이는 그들을 글래스고나 다른 공장도시로 몰아넣기 위함이었다.
또 다른 예로 19c 서덜랜드 여공이 있다. 이 여공은 씨족의 수장이 되자마자 서덜랜드 주의 주민 전부를 축출했다. 자본론을 인용하면 “그들의 모든 촌락은 파괴되고 소각되었으며 영국병사들이 이를 집행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주민들과 싸움을 벌였으며 자기의 오두막집에서 떠나기 거부했던 노파는 불길속에서 타 죽었다”
이렇게 부지런한 개미들이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서 수많은 빈민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이 빈민들은 그 자체로 치안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국가에서 법을 시행하는데 이 법 또한 앞의 과정 못지 않게 끔찍했다.
그 법이 바로 빈민법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1530년 재정된 법은,
“노동능력이 없는 거지는 면허를 받아야하고 건장한 부랑자는 달구지 뒤에 결박되어 몸에서 피가 흐르도록 매를 맞고 그 다음에 그들의 출생지 또는 최근 3년간 거주한 곳으로 돌아가 노동에 종사하겠다는 맹세를 한다. 부랑죄로 두 번 체포되면 다시 태형에 처하고 귀를 절반 자르며, 세 번 체포되면 그는 중죄인으로 또 공동체의 적으로서 사형에 처한다.”
1547년 법령은
참고문헌
참고문헌
-자본론 1권 하, 김수행번역, 비봉출판사,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그린비
-사진자료: 구글검색어: Lewis Hine , Jacob Ri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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