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통합 과정과 단일 유럽의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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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의 통합과정과 단일유럽의정서
민족주의의 근원지인 유럽에 유럽연합이라는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 유럽통합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첫 단계로 유럽통합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로마조약에 의해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핵에너지공동체(Euratom)가 탄생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부터 유럽핵에너지공동체(Euratom)까지의 조약의 목표는 경제적으로 시장통합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정치적으로 전쟁을 방지함으로써 유럽 내 평화 정착에 기여하고자 하는 등의 신기능주의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1986년 헤이그 유럽이사회에서 단일유럽의정서로 명명된 ECSC, EEC, Euratom 조약을 통합하고 수정한 새로운 조약문이 서명되었다.
단일유럽의정서는 유럽통합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유럽공동체에 팽배해 있던 유럽동맥경화증을 극복하고 통합을 진전시키기 위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유럽염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주요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수렴되고 유럽의회 등 다른 공동체 기구들도 유럽통합 진전을 위한 노력을 가하는 등 통합의 모멘텀을 제공했다.
1981년 5월 취임이후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복지확대를 골자로 하는 사회주의 개혁을 실시했던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개혁의 실패를 인정하고 1983년 상반기에 점차 유럽통합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유럽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두쥐위원회 설립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예산문제를 만족스럽게 타결지은 영국의 대처정부는 유럽경제공동체의 목적인 단일시장 이룩을 위한 정책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회원국 간의 이해관계 수렴 외에도 비전을 지닌 프랑스 재무장관 출신의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가 1985년 1월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6월에 열린 밀라노 정상회담에서 단일시장을 이룩하기 위한 백서를 제출했다. 이전에도 단일시장을 이루자는 비슷한 보고서가 많이 있었지만 이번 백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단일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안이 제시되었다. 이 백서는 밀라노 유럽이사회에서 회원국 수반의 지지를 받는다. 두쥐위원회는 단일시장을 이룩하기 위해 정부간회의를 소집할 것을 건의했고, 그 결과 1985년 9월부터 3달간 10개 회원국이 참가하는 정부간회의가 열려 12월 브뤼셀 정상회담에서 단일유럽의정서를 채택했고 이듬해 2월 서명하였다. 1993년 1월1일부터 상품과 서비스, 노동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을 이루기 위해 ’유럽 1992‘라는 표어로 1958년의 로마조약을 상당부분 수정했으며 유럽공동체 각 기구간의 권한배분을 변화시켰다. 무엇보다도 단일시장 완성이라는 경제적인 문제를 가중다수결 확대라는 제도적 개혁과 연계시켰으며 소비자 보호와 환경정책 등에서 공동체는 새로운 권한을 얻었다. 이밖에 1970년부터 회원국 간의 협의체로 운용되기 시작한 유럽정치협력(EPC, European Political Cooperation)도 좀 더 공동체 틀 안으로 들어오도록 규정했다. 공동체의 권한이었던 경제부문에 대한 개정과 공동체 밖에서 진행되어 온 유럽정치협력을 한 문서에 다루었다는 점에서 단일유럽의정서라고 불린다.
그러나 정부간주의자인 모라비칙이 정부간 회의의 결과를 영국과 독일, 프랑스간의 협상의 결과로 분석하고 있듯이, 각 회원국 정부의 역할은 단일유럽의정서의 성립에 있어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단일유럽의정서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국제정치경제의 변화와 주요 회원국의 이해관계 수렴 등을 지적할 수 있다.
단일시장을 통해서 살펴본 정부간주의
1979년부터 1984년까지 거의 5년간 유럽공동체를 마비시켰던 영국예산문제가 해결된 후 영국의 유럽통합정책은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 금융서비스와 해상운송 서비스 등 자국의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단일 시장이 될 경우 많은 이득을 얻을 것으로 내다본 영국은 단일유럽의정서 협상과정에서 국경 없는 시장의 형성에 건설적으로 관여하였다. 무엇보다도 영국정부는 독일이 자유무역의 원칙을 유지하고 단일시장 완성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단일시장 완성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독일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통해 자국에 유리한 협상결과를 이끌어 내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간회의에서 영국과 독일은 매우 제한적으로 협력하게 된다. 왜냐하면 각 국의 역사적 요인과 당시의 상황 때문에 양국이 유럽 공동체를 보는 시각이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국은 단일유럽의정서를 체결할 당시 단일시장의 완성을 원했던 반면에 독일은 통합의 발판으로써의 단일시장을 원했다. 마가렛 대처 취임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취해온 영국정부는 원래 로마조약의 목표였던 공동시장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국내에서 실시하던 공공지출의 과감한 삭감과 규제완화 등을 유럽으로 수출해 영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국익을 우선시한 것이다. 즉 어디까지나 단일시장을 이루자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국경 없는 시장의 완성이 필요하다는 것에 인정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통합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이를 원했다. 특히나 독일은 유럽통합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단일유럽의정서가 정치적 통합으로 가는 중간단계라는 것을 주장했다. 또한 각국은 어떤 방식으로 단일시장을 이룰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했다. 영국은 국내개혁과 같은 방식으로 규제를 완화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회적 시장경제 틀을 유지했던 독일은 근로기준이나 환경 등의 분야에서 하향평준화 혹은 사회적 덤핑을 우려하며 유럽차원에서의 규제를 원했다. 이런 논란은 단일시장의 경제체제와 연관이 있는데, 규제완화는 국가나 공공기구로부터 개입을 최소화하며 경제운영을 시장의 작동원리에 맡기려하지만 규제는 정부나 유럽공동체 기구의 개입을 의미했다. 비록 두 나라가 자유무역의 원칙을 공유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국가의 의견을 고수하였다. 특히 마가렛 대처 정부가 이끌었던 보수당 시절 영국은 전통적으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 시장 기능을 중시해 온 반면,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로 시장이 올바르게 기능하도록 정부가 공정경쟁규칙을 확립하며 노사정 3자가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자본주의가 특징이다. 양국의 상이한 입장 차이는 노동자의 권리와 노사관계의 사회정책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유럽차원에서의 노동자 권익을 보장하려고 했고 프랑스 역시 독일과 같은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영국에게 이런 입장은 국내개혁을 되돌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권한 축소를 야심차게 추진해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룬 대처정부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영국정부는 이 분야에 대해 매우 강력한 입장을 유지했고 단일유럽의정서에서 이와 관련된 규정은 불가피하게 느슨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집행위원회는 유럽차원에서 노사 간 대화를 발전시키도록 노력하며 이런 대화가 계약으로 이를 수도 있다고 규정했다. 다른 관련 규정 가운데 일부는 독일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일부는 영국이 바라던 방향에 가까웠다. 118A조의 경우에는 새로운 지침이 근로환경과 노동자의 안전건강에 대해 최소기준으로 정해지며 이 규정은 가중다수결로 결정된다고 규정되었다. 이 제안은 독일과 유사하게 높은 사회기준을 지니고 있던 덴마크 정부가 제안했고 독일 등의 지지로 채택되었다. 공동체 차원에서 최소기준을 정했다는 측면에서 독일이 원했던 방향으로 일부 반영이 되었다. 영국정부는 이런 규제가 기업에 부담을 준다며 가중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를 고집했으나 중소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안전조항을 삽입한 후에 가중다수결 도입을 승인했다. 두 나라가 사회정책에 대해 이처럼 상이한 입장을 보인 것은 경제철학과 산업구조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피터 홀이 주장하듯이 일국의 경제정책은 노동과 자본의 조직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영국은 대처 취임 이후 경제활동에서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기능을 회복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행했던 반면, 독일은 공정경쟁규칙을 확립하고 경제행위자들의 준수를 국가가 감독하는 시장의 사회적 측면을 중시했다. 게다가 노동자 대표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공동의사결정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조합주의적 특징에 따라 노동조합은 정부의 의사결정에 정식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노동조합은 단일유럽의정서가 주로 시장개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며 유럽차원에서의 사회정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상이한 산업구조 역시 두 나라의 정책선호도를 결정했는데, 1985년 말을 기준으로 영국 전체 노동력 가운데 65.8%는 서비스 산업에 종사했고 이 가운데 9.7%는 금융서비스 산업에 근무했다. 이와는 달리 독일은 제조업의 비중이 39.3%의 노동력을 고용했고 통상과 통신 분야는 18.5%에 불과했다. 따라서 영국정부는 자국이 경쟁력을 지닌 서비스 분야, 특히 금융서비스와 해운 분야의 시장 자유화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다. 그러나 독일은 제조업분야가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자유화에 치중했으며 서비스 분야의 자유화가 적대적인 인수합병을 용이하게 할 것을 우려했다. 공동의사결정에 따라 경영감독위원회에 재직 중인 노동자 대표들이 많은 경우 직업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이런 조치를 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영국 기업들은 주로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했기 때문에 적대적인 인수합병이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독일 기업들은 주로 은행 등 금융자본을 대주주로 거느린 경우가 많았고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인수합병이 용이하지 않았다. 1983년 말을 기준으로 런던주식시장에 상장된 영국기업의 시가총액은 1630억 파운드였으나 독일은 불과 570억 파운드에 불과했다.
이것을 통해서 단일유럽의정서를 통한 유럽연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합의 진전은 주요 민족국가들의 이해가 상호 일치할 때에만 이뤄지는 경색국면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정치협력을 통해 살펴본 정부간주의
1970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유럽정치협력은 회원국들이 주요 국제문제에 대해 정책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으로써 비공식적 합의로 운영되던 것이 단일유럽의정서를 통해 공동체 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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