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지인 어차고로 향했다. 어차고는 본래 신하들이 임금을 보비기 전에 다기하던 빈청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연과 주정소 그리고 캐딜락과 다임러, 어마차, 평교자, 초헌등이 전시 되어있었다. Ⅲ. 결 론 - 답사 후기- 창덕궁을 답사하는 동안 나는 여러 인물이 되어 보았다. 기독교신자라서 전생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왕도를 걸을 땐 조선의 왕이 되어 보았고, 선정전 안 한 곳에서 국사를 기록한 서기도 되어 보았고, 연경당 앞뜰에서 고개를 숙여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이웃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역사가 깊고 아름답기까지 한 창덕궁은 역시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내가 설문지 조사를 하러 갔던 날도 흐린 날씨와 바람이 심하게 불었지만 일본관광객과 중국 관광객 등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미래. 중고등학생들까지 즐거운 관람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관람들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난 동남아 여행이나 유럽 여행 등을 생각했었다. 무척이나 어리석고 한심한 생각이
나갔다. 이 세상에 어느 곳에서도 이런 정적인 분위기에 엄숙함을 압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곳은 없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도 종묘에 와서는 숙연해지고 종묘의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에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게다가 종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무형, 유형문화재 모두에 등록 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서 궁궐의 화려함부터 종묘의 엄숙함 모두를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다.
경복궁에 성벽과 이어져서 꼭지점이 되는 건물이 십자각인데 일제에 의해 엉뚱한 곳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고서는 안타까워했다. 경복궁을 나와서 광화문이 있던 장소를 따라 걸었는데 아직은 공개가 되지 않아서 자세히는 못 본게 아쉬웠다.마지막으로 비록 짧은 일정으로 와서 답사를 하다보니 부분부분 빠뜨리고 지나친 것들이 많아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종묘공원이나 운현궁, 경희궁과 같은 곳을 못 본것도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이런 기
답사 장소는 경교장이라고 하였다. 경교장에 대해서 몰랐던 나는 노량진역에서 전철을 타고 도착지인 시청역 까지 가면서 선배 형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는데, 경교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개인 사저로 김구선생의 행적이 남아있는 국내 유일의 장소라고 하였다. 현재는 강북 삼성병원에 소속되어 있는데, 일반인에게 관람이 허용되는지 몰라서 걱정이라고 하였다.시청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온 후, 우리는 어디를 먼저 갈까를 얘기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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