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회 연구 잠시 동안 제주 해군기지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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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회연구>
‘잠시동안’ 제주해군기지 취재기
2010년 9월1일. <제주도민일보>라는 신생지로부터 영입제의를 받고 과감히 입사를 결정했다. 신생지여서 내가 주도적으로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실제로 회사 측은 내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취재하고 싶은 현안과 쓰고 싶은 기사를 내 맘대로 결정하라는 식의 제안을 했고, 난 과감히 ‘제주해군기지’를 선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택에는 다양한 전략이 숨어있었다. 신생지여서 가장 빨리, 쉽게 대중들에게 읽힐 컨텐츠가 필요했는데 당시 가장 좋은 현안이 해군기지 문제였다. 2010년 9월은 우근민 지사가 다시 제주도정의 수장으로 갓 취임한지 얼마 안된 때여서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적잖은 변화가 예고됐다. 다른 언론사들은 우 지사 취임으로 마치 해군기지 문제가 끝난 듯 인식했고, 생산하는 기사 속에는 ‘종료’ 식의 자포자기 의식이 담겨있었다. 실제로 당시 강정마을은 ‘입지재검토’라는 카드를 꺼내 화순, 위미리 등의 지역이 해군기지 유치를 재논의해줄 것을 요구했고, 만약 유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받아들이겠다는 제안을 한 터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쉽사리 이 문제가 종료될 수가 없고,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군기지 취재를 전담받고 당장 강정마을로 달려갔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정마을에서는 ‘입지재검토 백지화’를 선언하고 전면 재투쟁으로 복귀했다. 내겐 고생길의 시작이자, 인생에서 몇 되지 않은 가장 짜릿한 경험의 여정을 걷는 순간이기도 했다.
신생지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내 방문에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이미 기존 언론에 굉장한 염증과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해군기지 문제가 이렇게까지 꼬인데에는 언론이 큰 몫을 했다고 자체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3일 이상은 무조건 강정마을을 찾았다. 일이 터질때면 전화로 취재하기 보다 가급적 현장을 직접 찾아 주민들과 얼굴을 익혔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내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수 있는 틈이 의외로 컸다. 적응에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기대 밖의 호의와 배려에 많은 기사를 쓰고, 다양한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고충도 존재했다. 주민들에게 나름대로 신뢰가 쌓였는지 몰라도 일만 터지면 내게 전화를 해와 수시로 딜레마에 빠졌었다. 이를테면 새벽 6시 잠을 자는 순간에도 무조건 강정에서 일이 터지면 주민들은 내게 전화를 했다. 공사를 막다가 충돌하고 있으니 와달라는 거였다. 그 때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강정마을로 향해야 했다. 덕분에 현장의 생생함을 가장 먼저 길어올리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래서 강정마을의 문제가 지방선거 이후로 일시 소외됐다가 양윤모 평론가의 옥중단식으로 전국적으로 규모화 된 과정,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경찰, 공사관계자들과 육탄전을 벌이며 강제진압에 저항한 과정, 강동균 회장의 구속으로 전국적인 공안사건으로 비화된 과정, 육지경찰이 대규모로 입도해 ‘제2의 4.3’의 논란을 만든 과정 등을 가장 옆에서 생생히 봤고 기록하게 됐다.
특히 강동균 회장이 경찰에게 잡히고, 구속되고 그 다음날 대검에서 공안대책회의까지 열려 이른바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이 ‘공안사건’으로 비화된 과정은 너무나 머릿속에 생생하다. 2011년 8월25일(사실 제주도민일보를 그만두기 약 일주일 전이다) 오후 강동균 회장이 공사진행에 항의하다 미리 매복하던 경찰에게 붙잡히지만, 경찰 호송차량은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거센 항의에 7여시간 동안 강정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아니, 아예 주민들은 경찰차량을 둘러쌌다. 그러던 중 오후 11시가 넘어가자 서귀포서장이 조사 후 자정 전 강 회장을 석방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으로 인해 강 회장은 순순히 서귀포경찰서에 출두하지만 돌아온 것은 ‘구속결정’이었다.
그 때 나는 강정마을과 서귀포경찰서를 잇따라 방문해 모든 상황을 취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강 회장이 서귀포경찰서에 출두한 뒤 자정전에 강 회장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며, 서귀포경찰서에서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귀포경찰서 관계자에게 돌아온 답은 “사건이 굉장히 커졌습니다. 검찰에서 공권력이 훼손된 사건이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석방을 거부했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질 것 같습니다”였다.
동시에 석방이 불허됐다는 소식을 들은 강정마을 주민들은 서귀포경찰서 정문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새벽 4시가 되도록 경찰서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상황을 계속 지켜보던 나도 새벽 5시가 돼서야 서귀포경찰서를 떠날 수 있었다. 평화로를 유유히 운전하던 길, 어느덧 동이 트고 도로는 지난 밤의 적막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다. 뭔가, 과연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하고 지금 이 여명이 뭔가 좋지 않은 일의 서막이 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잠시 잠을 청하고 깨보니, 한국사회는 ‘해군기지 문제’로 소위 난리가 나 있었다. 조중동의 보수언론은 아낌없이 1면을 할애해 지난 밤 경찰이 겪은 ‘굴욕’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자들을 일망타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이에 화답하듯 대검찰청은 2년만에 관계기관을 불러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었고 ‘제2의 4.3’이라는 인식 틀을 본격 가동하게 한 대규모 육지경찰을 제주도에 투입하는 강수를 둔다. 이후 과정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육지경찰 병력에 의한 대대적인 진압과 공사현장의 펜스설치, 구럼비 해안 발파 등이다. 작은 해프닝에서 비롯한 강동균 회장의 연행이 결과적으로 대규모 공권력에 의한 강제진압이라는 ‘눈덩이’를 만든 것인데, 국가가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매뉴얼이 은밀하게 작동한 결과라는 가정을 하면 소름이 끼친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이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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