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논의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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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2002년 2월 28일 국회는 일제시대 친일행각을 일삼은 자 708명의 인명을 공개했다. 해방 이후에 재야 사학자들이 친일파 들을 간간히 밝혀 온 것은 사실이지만 국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친일 문제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었다. 명단 발표 이후 일부에서는 아직도 부족하고 미흡하다는 반면 일부에서는 지금 시기에 친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왜 친일파를 청산해야 하는가, 민족의 정체성을 찾으면 어떠한 이점이 있는가, 세계화의 물결로 인해 자유주의가 판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친일파 청산이 왜 필요한 것인가, 친일파 청산은 지나친 민족주의가 아닌가, 친일파 청산의 논의를 보면서 한번쯤 갖게 되는 생각이다. 앞으로 진행되는 발표를 통해 위의 의문들에 대해 고민해보자.
( 친일파의 개념 및 등장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친일파라는 용어는 “외세와 친연성을 갖고 있는 정치집단” 이라는 의미가 아닌 민족적 정서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반역사적 행위를 한 매국노 혹은 민족반역자와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친일파의 개념은 개화기 운동을 전개하였던 인사들 중 갑신정변을 일으킨 변법개화파에서 시작되었다기 보다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시대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즉, 식민지화의 첨병 역할을 하였던 매국노, 식민지 시대 일제에 붙어 식민정책을 미화하거나 동족을 압박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에 목숨을 버리도록 부추겼던 반민족 범죄자들 등이다.
따라서 친일=반민족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시대에까지 친일파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19세기 말까지 각 정치세력들은 개혁의 모델을 청국 일본 미국으로 삼으면서 그 성향에 따라 친청, 친일, 친미로 구분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이 시기는 친일=매국으로 보기가 어렵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시아 연대론과 삼국공영론 등이 들어와 우리 언론 등에서 언급되기 시작하였지만 이는 러일전쟁기에 들어서면서 친일론으로 바뀌어갔다.
친일파는 러일전쟁기부터 1910년 한국의 식민지로의 몰락 과정에서부터 등장하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노일전쟁기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본격적으로 동양평화론과 문명개화론을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을 앞장서 전파하여 줄 인사들이 필요하였고, 앞서 아시아 연대론이나 삼국공영론 등을 주장하였던 인사들 중 일부가 이에 앞장서 일본과 목소리를 같이 하였다. 바로 친일파가 출연한 것이다.
이 때의 친일파는 크게 세 부류의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진회(송병준이 조직)와 같은 적극적 친일단체이다. 이들은 군부와 우익단체들의 조종과 원조에 의해 활동하였다. 일진회는 조선과 일본과의 관계를 동일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입술과 이, 수레의 바퀴처럼 밀접하고 불가분의 관계라고 규정하고 통상 이래로 한국독립의 기초가 성립되고 자주권이 더욱 굳어졌으며, 특히 러일전쟁 이후에 그러하다고 하였다. 일진회는 ‘보호조약’이 체결되기 직전에 선언서를 발표하여 일본과의 보호조약 체결을 주장하였고, 그들은 일본이 ‘선진 선각국으로 동양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런 의협심에서 청일 러일 전쟁을 치루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독립보전 강토유지는 일본 황제가 세계에 공포한 것이므로 의심해서는 안되고, 오직 ‘우방의 지도에 순순이 의거하여 문명에 나아가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다. 즉 일본의 문명개화론을 철저히 신봉하고 있었다.
둘째, 정부를 장악하고 있었던 이완용, 조중응과 같은 고관들로서, 이들은 이토와 통감부 당국에서 직접적으로 원조하고 이용하였다. 일제는 이 시기 과거 갑신정변 갑오개혁에 참여했던 일본 망명객들을 귀국시켜 친일파로 이용하였으며, 때로는 일진회세력과 서로 경쟁시켜 실효를 거두기도 하였다. 학부대신으로 보호조약을 사실상 주도하였던 이완용은 1907년 총리대신이 된 이후 일본과의 적극적 제휴를 주장하였다. 일본과는 지리적 조건으로 가장 유리하고, 일본은 한국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의 일관적이며, 그리고 일본이 한국을 병합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한국의 독립을 부식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점 등을 열거하면서 ‘안심하고 일본과 제휴하여 한국 독립의 실력을 양성하도록 노력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신협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을 혁신하고 시국의 이해를 정돈하는 것은 선진의 지도를 받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들은 일본과의 제휴를 통해서만이 부강, 문명개화를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일진화와의 친일경쟁 속에서 오히려 일진회를 몰아내고 ‘합방’을 추진하였다.
셋째, 일부 계몽운동에 참여하였던 이들, 일본유학생도 차츰 친일파로 변해가고 있었다. 일제는 적극적인 합방론이 반일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아 이들을 대상으로 동양평화론 삼국연대론 등을 유포시켜 친일세력으로 끌어 들였다.
( 친일파의 형성
1) 19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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