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혁신의 사상 적기 반연 구박 정희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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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최근 정부개혁이나 정부혁신에 대한 필요성에 따라 그에 관한 연구가 유행처럼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특정한 통치자나 정부의 혁신이 가지는 사상적 배경에 관해 본격적으로 연구한 예가 거의 없다. 이에 이 연구 논문은 정부혁신을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는 박정희 정부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혁신이 어떤 사상적 배경에 근거해 이루어졌으며, 그 사상이 반영된 정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고찰하고 있다. 여러 정부들 중 박정희 정부를 연구 대상으로 한 것은 정부의 혁신이 정책과 제도, 인력에 걸쳐 가장 광범위하고 단절적으로 추진되었던 시기가 5·16 쿠데타 이후 성립된 박정희 정부 때였기 때문이다. 쿠데타 당시 성명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시기는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하며,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기 위해서 국가의 모든 면에서 혁신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혁신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혁신의 방향을 결정하였던 혁신의 사상적 배경에는 크게 권위주의, 민족주의, 교도주의, 성장주의가 있다. 이들 사상이 각기 따로 혁신에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박정희 정부가 지속되는 가운데 모두가 복합적으로 혁신을 이끌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우선 각각의 사상이 어떤 배경에서 형성되었고 혁신의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권위주의는 박정희의 독단적 성격과 권력의지라는 개인적 요인과 조국근대화 과정에서 급속히 주조된 지배계급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전략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박정희는 유교적 전통이 강한 경상도 지방에서 나고 자라 전통적인 유교가치를 중요시했으며, 정치세계의 근본을 유교적 가족질서의 확대로 인식하여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내보였다. 또한 박정희는 만주의 신경군관학교와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를 각각 졸업했고, 광복 때까지 만주국의 군대에 배속되어 군인으로 활약하였다. 당시 성장기에 있던 청년 박정희는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것 보다는 적극적이고 분명한 것을 열망하게 되었고 무인적 기질을 강화시켜 나갔다. 군대에서 확고한 위계질서 아래 생활한 그는 오로지 명령과 복종만을 경험했을 뿐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있어 민주주의는 목표가 아닌 절차나 규칙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권위주의적인 당시의 정치문화도 그의 권위주의적 성향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권위주의적 전통은 조선과 한말, 일제를 거쳐 점차 왜곡되는 과정을 통해 광복 후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내재화된 반공주의는 이념적으로도 권력이 집중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권위주의라는 사상은 유연하고 민주적인 정책 집행이 이루어 질 수 없게 했고 억압기제를 주로 사용하여 동의와 설득의 과정 없이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강제적 대중 지배 전략이 구사되게 하였다.
권위주의만큼이나 박정희 정부의 사상적 배경에 짙게 깔려 있는 것이 민족주의였다. 5·16 쿠데타 자체가 민족주적 근본동기에 따라 행해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혁명공약 상에서도 민족주의의 색체가 잘 드러난다. 집권 초기에 박정희는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사대주의나 당파성과 같은 민족의 전통은 조국의 근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하였다. 자주와 자립을 강조하면서 자립에 기반을 두지 않은 민족주체성은 한갓 가식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집권 후반기에 해당하는 유신을 전후로 해서는 우리 민족을 신라가 3국을 통일한 이후 하나의 통일 민족국가를 유지하였으며 무수한 외침을 겪으면서도 자주적이고 문화적이며 평화애호적인 민족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홍익인간사상과 한글 창제, 화랑도 정신 등을 특히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적 가치를 중요시 하였다.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한국민족주의는 극우 국수주의화 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권위주의화 하는 체질을 가져왔다. 그 결과 박정희의 민족주의는 집단주의 성향을 강하게 내포하게 된다. 국가, 민족, 개인을 모두 같은 것으로 보는 등식이 성립하게 되고 국가와 개인의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민족의 대의 아래 개인은 정치적 복종을 요구 받게 됨으로써 이때의 민족주의는 파시즘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박정희 정부의 사상으로 교도주의를 들 수 있다. 박정희는 성공한 국민은 그를 지도하고 운용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지도자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국민에 대한 교도와 지도, 계몽을 강조하였다. 그의 지도자 중심사상은 엘리트주의에 입각한 목표지향적인 정책운영방식으로 구현되었다. 한국적인 새로운 지도이념을 확립하여 인간개조와 국민정신 진작이 필요하다는 주장 아래 다양한 국민운동이 전개 되었다. 그는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지시하고 그것을 관철시켜 정부와 국민 사이에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 관계가 형성되게 하였다.
박정희 정부의 사상적 배경의 마지막 요소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성장주의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주국근대화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성장주의는 명실공이 가장 중요한 혁신의 기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쿠데타 주체들은 통일적이고 명확한 경제정책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계획을 선호하였고, 따라서 이전에 방임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바꾸어 나라살림을 꾸려 나가고자 하였다. 이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지도받는 자본주의(guided capitalism)이라는 말로 구체화 되었다. 정부는 중요부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하거나 간접적으로 유도정책을 씀으로써 경제성장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장주의는 방공주의나 권위주의와 결합되어 생산하는 정치와 능률지상주의를 표방하게 하여 불도저식으로 경제정책을 밀고나가게 하였다.
박정희 정부의 혁신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는 권위주의, 민족주의, 교도주의, 성장주의는 실제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금융통제정책, 새마을운동이라는 혁신정책으로 구체화 되었다. 먼저 경제개발 5개년 계호기은 민족주의와 성장주의, 교도주의가 혼합된 형태로 시행되었으며 특히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고도 경제성장과 방위산업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반공주의와 권위주의가 디시 결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자원을 국가가 주도하여 배분하는 경제성장방식이 채택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진 경제성장 정책은 민간부문의 자발적인 투자 촉진보다는 정부 통제 위주의 경제 통제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더욱이 경제계획은 군사작전과 같이 추진되어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계획을 결행해야 했고 이에 따라 경이적인 경제발전이 이룩될 수 있었다. 한편, 금융통제정책의 경우는 박정희 정부의 권위주의와 성장주의, 교도주의가 결합되어 이루어졌다. 박정희 정부는 근행을 국유화 하고 관련 법규의 개정, 국가은행의 개편 등의 조치를 통해 금융권을 장학하고 국가주도적인 금융체계를 형성하였다. 금융정책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정부가 장악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감독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일제시대에 확립된 지도금융의 관행을 보다 심화시켰다. 마지막으로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부의 권위주의적인 행정문화와 엘리트의 교도주의에 의해 진행된 것이었다. 새마을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그 당사자인 농민은 정책결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고 위로부터의 하향식 계획 수립과 지도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농민의 소득증대와 기술혁신, 생활환경개선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될만 하지만 새마을 운동은 어디까지나 정부주도의 관제운동이었고 주민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걸맞은 자율적인 시민사회 형성이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박정희 정부는 여러 혁신사상에 근거한 혁신정책들로 국민의 협력을 얻는데 성공함으로써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즉, 고도 경제성장과 산업구조의 고도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도시화 등 국가의 면모를 근대적으로 일신시켜 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외채무가 급증하고 일본이나 미국에 편향된 무역구조와 자본의존은 자립경제의 달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정부의 계획형 지도는 국민이 정부에 의존하고 자율성이 크게 제약되도록 하였다. 박정희 정부의 개혁 주체들은 경제성장과 함께 유능하고 젊은 인재의 충원, 현대적인 기획관리기술의 도입 등에 힘입어 국민과 함께 국정을 민주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도구주의적인 사고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정신적 근대화에 실패함으로써 정부혁신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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