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기독교 C 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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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제목이 주는 가장 쉽게 느껴짐 이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평소 기독교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왜 열심히 종교 활동만 하면 되지 신학이 필요한지 어느 정도 의문을 가졌다. 신학이라는 것은 대서양을 건널 때 사용되는 지도 바다만 본다고 전부가 아니듯이 바다 건너편 타 대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기독교 교리를 배우고 거기에서 끝이라 생각한다면, 바다만으로 감동한 사람의 경험보다 생생하지도 않고 흥미롭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에는, 정말로 하나님을 만났던 분들에 경험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더 먼 곳으로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도를 써야하듯이 신학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면, 해변에서 파도를 구경할 때처럼 흥분만 있고 결과가 없게 된다. 지도는 갖고 있지만 바다에 가지 않는다면 소용없다. 지도 없이 바다에 가면 위험하다. 기독교에 대해 명확하고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평범한 종교적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꼭 필요하다.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은 4분류로 우리의 이성과 인격을 넘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기독교의 여러 개념에 대한 첫 걸음의 발판을 제공한다. 이런 것을 신학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붙어있기만 해도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기독교의 주안점들 중 가장 충격이다. 이 말에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낳다와 만들다라는 두 단어를 사용했다. ㄱ이 ㄴ을 낳는다는 것은 ㄱ과 ㄴ이 같은 종류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사람을 낳고, 호랑이가가 호랑이를 낳는다. 하지만 ㄱ이 ㄴ을 만든다는 것은 ㄴ은 ㄱ과는 속성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낳지만, 창조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다. 사람은 어떤 점에서는 하나님을 닮았지만, 하나님과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하나님의 조상이나 초상화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을 갖고 있지 만사람 안에 있는 생명(바이오스)은 하나님의 생명(조에)과 동일하지가 않다. 바이오스는 조에와 닮기는 했지만, 같지는 않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정육면체가 하나의 정육면체인 동시에, 여섯 개의 정사각형인 것처럼 성경에서는 삼위일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신학적인 개념을 만들었을까? 이것은 바로 경험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인간이 나타나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승천한 후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들 가운데 임재 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을 살펴본 후 사람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정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은 혼자에게만 주어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참다운 사람에게만 자신의 있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참다운 사람이란 단순히 선한 개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몸 안에 연합되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하나님을 배우기에 정말 적합한 도구란 하나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다.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깨닫고 만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한 순간에 한 곳에 밖에 있을 수 없고, 현재밖에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기도하는 것을 들으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일 할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시/공간적인 차원을 넘어선 차원에서 인간을 보고 계신다. 우리의 과거나 미래가 하나님께는 바로 현재가 된다. 우리가 내일 할 일을 알고 계신다면 나에게는 그와 다르게 행동할 자유가 없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흐름에 매여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흐름 밖에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 우리가 내일이라고 부르는 날도 오늘처럼 보실 수가 있다. 그에게는 모든 날이바로 지금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제 한 일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일 할 일을 예견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고 계신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내일 할 일을 아시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행동하기 전까지는 어떤 행동을 할 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 행동을 하는 순간 하나님께는 이미 지금이 된다.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원인이 먼저 있어야 결과가 있게 된다. 밥을 급하게 먹어야 체하게 되고,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어야 다음 날 졸립게 된다. 하지만,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는 꼭 원인이 먼저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성부가 성자를 낳는다고 표현을 했는데, 이 말을 오해하면 성부가 먼저 있고나서(원인이 되고 나서) 성자가 존재하게 되었다(결과가 발생했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성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성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성자를 낳기 전 성부만 계셨던 순간은 한 순간도 없다. 성부와 성자의 결합이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성경 말씀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한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에게 품는 감정이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부와 성자의 결합을 통해 성령 하나님이 실제로 나오시게 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삼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생명에 참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연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을까? 바로 하나님이 그 뜻대로 하시도록 자신을 그분에게 맡겨야 한다. 이렇게 맡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조에)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는 이 생명을 사람들에게 퍼트기 위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이 오신 것이다.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맡기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죽고 부활했을 뿐인데, 그 죽음과 부활이어떻게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는가? 인간이 바이오스에서 조에를 얻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장난감 양철 병정이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양철인형이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은성자가 몸소 사람이 되어 ,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고, 그 죽음을 부활한 것이다.하나의 양철인형이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다른 양철 인형이나 그 조상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인류를 시간 안에 펼쳐놓고 본다면, 인류는 제각각 흩어져 있는 무수한 점이 아니라 점점 성장해 가는 단일체 -가지를 무성히 뻗은 나무처람- 보이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신 일의 효력은 인류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 효력은 그리스도 이후에 태어난 사람뿐 아니라 그 이전 사람들, 그리스도를 전혀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까지 미친다.이 효력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일, 창조된 존재에서 태어난 존재로 바뀌는 일, 즉 구원을 받는 일이다. 원칙적으로모든 인류는 구원을 받았다. 물론 우리 각 사람이 그 구원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정말로 어려운 일-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 생명으로 가득찬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자신을 드러내기만 하면 그가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큰일을 행하실 것이다. 세상에서 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선량하다는 것은 자아가 다른 무엇인가(도덕이나 바른 행동, 사회적 규범)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노력으로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순종하기만 하면 자아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된다. 이 두 개념(자아와 규범)은 서로 충돌하는것이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사람은 선량해지기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속으로는 투덜거리면서 규범에 순종하는 아주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량함은 이것과는 아주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우리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방식은 우리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앞의 방식보다 더 어렵기도 하고 더 쉽기도 하다. 우리 전부를 드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래도 이것은 우리가 애써 선량하게 되기를 노력하는 것보다는 더 쉬운 일이다. 이루기 지금 애쓰고 있는 것은 자아를 지키고 행복하게 하면서 동시에 선량해지도록 규범에 순종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생각과 마음은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두면서 동시에 정직하고 순결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이렇게 할 수 없다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벽하게 만들고 변화시키기를 원하신다. 일단 시작하신 일은 어떤 일이 닥쳐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고야 마신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 앞에 뒷걸음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게으름이고 비겁함이다. 그 계획에 승복하는 것은 자만이나 과대망상이 아니라 바로 순종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 안에위대한 성인들의 거룩함과 영웅적 면모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겠다고 작성하셨다. 이 일은 이생에서는 완성되지 못할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죽기 전에 가능한 한 그 목적지에 가까이 우리를 데려가고자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힘든 시기가 닥쳐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그런 연단은 우리를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끌고 가시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전에는 우리가 꿈도 못 꿀 만큼 큰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상황으로 끌고 가시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불필요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재료삼아 엄청난 일을 계획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내가 온전한 것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은 이상주의적인 명령이 아니다. 불가능한 것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는 지금 우리를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다. 만약 기독교라는 종교가 나의 이성으로 다 수긍이 가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나의 생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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