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금강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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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계룡산의 풍수와 조선의 천도 논의

Ⅱ. 사림의 계보
1․ 이이 - 김장생 - 송시열
2․ 노론과 소론

Ⅲ. 금강문화권의 서인
1․ 박팽년과 성삼문
2․ 조헌
3․ 김장생과 이유태
4․ 노론, 송시열과 송준길
5․ 소론, 윤증

Ⅳ. 금강문화권의 남인
1․ 회덕 안동 권씨의 발자취
2․ 권시의 학문

Ⅴ. 참고자료

본문내용

Ⅱ. 사림의 계보
1. 이이-김장생-송시열
이이 - 김장생 - 송시열’을 연결한 것은, 이이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호서지역의 서인들은 김장생 - 송시열로 이어지면서 이이 중심의 성리학 이해와 절의를 중심으로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를 중심으로 한 학파는 그와 동시대에 교류한 학자들뿐만이 아니라 문인과 제자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제1세대는 이이에게 직접 배운 세대로서 김장생, 조헌, 정엽, 이귀 등이 대표적이다. 제2세대는 이이에게 직접 배우지 않고, 제1세대의 문인들에게 배워 이이의 학문을 다음세대에 전수한 세대로서 김집이 대표적이다. 제3세대는 송시열로 대표되는데, 이이의 학문을 토대로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천에 매진하였던 세대이다. 제3세대에는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외에도 많은 이들이 해당된다.
이이는 성리학자인 동시에 경세가였고, 나아가 조선후기의 서인학파의 학문적 구심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이의 성리학적 이론이 현실적인 실천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계기는 이이의 문인들이 다수 참여하였고, 남인과의 협조 아래 시도된 인조반정으로 서인과 남인이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부터이다. 이이의 경세론에 관한 주장은 당대에는 선조에 의해 채용되지 않았으나 인조반정 이후 서인들의 개혁론이 되어 점진적으로 실천의 대상이 되었다. 김장생은 호서서인의 한 사람으로 이이를 이어 송시열로 이어지는 서인계열의 전수자로 평가되며, 예학을 계승한 인물이다. 그러나 김장생은 송익필의 제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이만을 이었다고 보긴 힘들다. 송익필은 이이 외에도 서경덕의 연원에 속하는 인물들과 친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 책·논문

- 강주진, 1971, 『이조 당쟁사 연구』, 서울대출판부
-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2009, 『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아서 - 금강문화권』, 역사공간,
- 김홍철, 2008, 『종교와 공간 ; 계룡산(鷄龍山)과 승지신앙(勝地信仰)』, 한국종교학회
- 송인창, 2007, 『계룡산(鷄龍山) 문화(文化)에 나타난 후천개벽사상(後天開闢思想)』, 한국동서철학연구회
- 이해준, 1998, 『초려 이유태의 향약과 정훈』, 신서원
- 정기철, 1998, 『萬東廟의 創建전말과 건축형식』, 공과대학논문집
- 정만조, 2005, 『시론 : 서원에 거는 오늘날의 기대 - 선비문화 8권』, 남명학연구원
- 정만조, 2007, 『한국(韓國) 서원(書院)의 역사(歷史) - 한국학논총』,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정재훈, 2008, 『조선시대의 학파와 사상』, 신구문화사
- 충청남도, 2001,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해설집』, 충청남도
- 조준하 외7인, 1996, 『한국 인물 유학사 3』, 한길사
- 충청북도, 2002, 『(호서사림의 본향)충북의 유교문화를 찾아서』, 충북학연구소
- 한기범, 2007, 『우암 송시열에 대한 후대인의 추숭과 평가』, 충남대학교대학원박사논문

※ 인터넷

- http://100.naver.com/ (네이버 백과사전)
- http://www.encyber.com/index.html (두산 백과사전)
- http://ko.wikipedia.org/ 위키 백과사전
- http://www.britannica.co.kr/ (브리태니커백과사전)
- http://www.cha.go.kr/ (문화재청)
- http://blog.daum.net/4855028/6973826 (블로그)
- 조혁연 기자 chohy@jbnews.com, 우암의 공과논쟁 "현재 진행형", 중부매일, 2006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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