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루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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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발렌타인(2010)
데렉 시안프랜스 감독
라이언 고슬링, 미셸 윌리엄스, 존 도먼, 마이크 보겔 출연
영화는 주인공 신디(미쉘 윌리엄스)와 딘(라이언 고슬링)이 집에서 기르던 개가 사라진 사건으로 시작된다.
꽤나 축축한 느낌마저 드는 영화 시작의 사건. 사라진 개의 행방을 궁금해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지극히도 일상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신디와 딘. 이 두 사람이 이룬 가정의 아침 식사 모습을 보면 여러분은 지극히도라는 수식어의 적합성에 동의할 것이다. (특히 신디가 딸 프랭키에게 아침 식사를 하라며, 재촉하는 모습은 실제 미쉘 윌리엄스가 그녀의 딸 마틸다에게 식사를 시키는 모습이 아닐 지 오해를 일으킬 만큼, 사실적이다.) 두 사람은 이미, 연인이라는 단어보다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서로에게 익숙하다. 신디와 딘이 사랑한 적이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만큼의 건조한 대화. 자동적인 반응과 행동. 어쩌면 어느 가정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어느 정도 전개 되면서 서울의 000네 가족과 같은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일상이 그려지고, 우리는 그들이 기르던 개가 죽었음을 확인한다. 그렇다. 개가 죽었다. 그러나 기르던 개의 죽음은 사건의 전개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개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고, 추모하며, 찍어 두었던 영상을 보던 딘은 신디에게 일탈을 제안하게 된다. 신디는 딘의 갑작스럽고, 반강제적인 제안에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된다. 그들의 일탈은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시외의 ‘러브호텔’로 가 하룻밤 숙박을 하는 일이다.
여러분은 쌓아둔 감정이, 감정의 원인과 무관한 사건으로 터진 적이 있는가? 예를 들면,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받은 스트레스가 전혀 무관한 연인의 약속시간 지각, 마음에 들지 않는 옷에 대한 불만으로 포장되어 이별을 맞은 적이 있는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벌어지는 무의식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일이, 딘과 신디의 일상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귀여운(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귀여웠다.)러브호텔로 향한다. 영화는 아주 미묘하게, 두 사람이 러브호텔로 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사랑의 시작의 단서를 찾아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과거로의 장면전환이 이루어진다. 자칫하면 정신없어 질 수 있는 전개에서 영화는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정도 장면으로 과거와 현재의 장면을 교차시키며, 두 사람의 사랑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신디와 딘은 영화 중반의 대부분을 러브호텔의 future룸에서 보내게 된다. (future룸은 ‘미래’라는 방의 주제를 위하여 우주의 분위기를 느끼도록 꾸며져 있다. ) 아이러니하게도 future룸에서 우리는 그들의 future을 예감하게 된다. 신디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애쓰는 딘, 자신도 모르게 딘을 밀어내고 있는 딘. 우선 두 사람의 어긋난 감정은 인간의 가장 말초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육체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마음은 감지하지 못하여도, 몸은 감지한다고 하였는가. 신디는 딘의 육체적인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다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이루어진 언어적 대화에서도 신디는 회의적인 질문과 대답으로 딘을 ‘공격’한다. 그들의 대화 중, 딘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라고 재촉하는 듯이 신디는 질문하게 된다. 그 때 딘이 신디에게 대답한 내용은 딘이 얼마나 신디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이 원하는 시나리오는 뭐지? 나는 원래 결혼할 생각조차 없었어. 그런데 당신을 만나면서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어졌고, 프랭키의 아빠가 되고 싶었어. 그리고 나는 당신의 남편이 되었고, 프랭키의 아빠가 되었어. 나는 이것으로 만족해. 그런데 뭘 자꾸 해보라는 거지? 관객인 우리는 딘이 얼마나 신디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만, 신디에게는 미래도, 꿈도 없는 대답처럼 느껴질 뿐이다.
원치 않은 아이를 임신한 신디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찾아왔던 딘은 ‘안정감’의 유혹이었을까. 뱃속에 있는, 프랭키의 아빠를 위해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단순히 사랑 ‘자체’를 하기 보다는, 우리도 모르는 이유로 인하여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사랑에 빠졌다는 ‘착각’으로 지낼 수도 있다. 신디의 뱃속에 있던 프랭키가 신디의 착각에 한 몫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그녀, ‘신디’를 위해서 그녀의 과거와 과거의 흔적(프랭키)까지 사랑하는 남자 딘.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딘은, 첫눈에 빠진 사랑에 목숨걸고, 헤어짐 자체를 두려워 한 것은 아닐까. 죽을 때까지 사랑을 해야하고, 절대 헤어져서는 안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무의식적인 강요를 해왔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물론, 그저 사랑에 충실하고 열심이었던 안타까운 한 남자일 지도 모른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딘과 신디는 ‘봄날의 간다’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한다. ‘사랑이 변하니?’라는 한 청년의 질문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딘의 질문이 되어 나타난다. ‘당신은 나와 함께 약속하였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견디기로.’ 벽을 잡고, 울음을 참다, 재채기처럼 참을 수 없는 울음을 쏟아내며 딘은 울부짖는다. 은수와 신디는 대답이 없다. 다만 미안할 뿐이다. 하지만 은수와 신디는 다르다. 은수는 담담하게 미안함을 상우에게 건낼 뿐이다. 하지만 신디는 가슴을 치며, 미안함을 호소하고, 이해를, 용서를 구한다. 우리는 신디에게서는 은수에게서 볼 수 없었던 노력과 인내를 볼 수 있었다. 신디와 딘은 사랑은 인내와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본능적인 움직임도 한 몫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주 현실적으로. 그들은 충분히 노력하고, 사랑했던 어른이었고, 우리였다.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위험하다. 그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다만, 사랑함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완벽하게 잊고 지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 중, 누군가가 신뢰를 깨고, 흘러가는 마음에 따라 행동하느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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