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학개론] 영화감상문 - 메종 드 히미코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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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9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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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히미코
<메종 드 히미코>를 보고
<메종 드 히미코>는 게이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속 여주인공인 사오리는 페인트 회사에서 일을 하며, 어머니의 장례비용의 빚에 허덕이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오리가 일 하는 곳으로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하루히코라는 사람으로 그녀의 아버지의 연인이다. 그는 그의 연인인 히미코가 암에 걸려 병세가 악화 되었으니 그녀에게 <메종 드 히미코>에 와서 일주일에 한번 씩 아르바이트를 해줄 것을 제안한다. 처음엔 거절하던 그녀도 많은 액수의 제시에 결국은 <메종 드 히미코>를 찾게 된다. <메종 드 히미코>는 사오리의 아버지인 히미코가 지은 일종의 게이를 위한 요양원이다. 그는 예전 긴자에 있던 게이바 ‘히미코’를 운영하였으나, 암에 걸린 이후 그곳의 문을 닫고 요양원을 설립하였다. <메종 드 히미코>에 찾아간 사오리는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버린 원망스러운 아버지와의 재회, 여장을 하는 게이들의 모습과 그들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혐오의 눈길로 바라본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 사는 야마자키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클럽에 가게 된다. 여장을 한 야마자키는 그 곳에서 예전 같이 일을 하던 동료를 만나게 되고, 그는 야마자키를 비웃으며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 사오리는 그 모습에 분을 참지 못하고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그 모습을 본 하루히코는 그녀에게 알 수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 일이 있은 뒤, 하루히코는 사오리와 육체적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그의 성적 성향 때문에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다.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육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루비를 그의 자식에게,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맡기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사오리는 그 곳을 떠나게 된다. 그 후 그녀의 아버지가 죽고 그의 유품을 챙기러 오지만, 두 번 다시는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회사에 의뢰가 들어온다. <메종 드 히미코>식구들이 그녀가 보고 싶다고 벽에 낙서를 하고 그것을 지워달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을 재회를 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는 게이라는 사람들을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고 단지 그들도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이해하게 한다. 게이, 동성애자라고 하는 말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면서 역겹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마 대부분의 반응일 것이다. 나 또한 그 정도까지의 반응은 아니지만, 그들을 평범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와는 다른 성적 성향 때문에 그들의 모습 자체가 왜곡이 되어서 나에게 다가온다. 그런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이 <메종 드 히미코>안에서는 중학생과 시설 주변의 주민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오리가 처음에 <메종 드 히미코>에 갔을 때 주변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그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지만, 할머니는 매몰차게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또 중학생들은 시설의 벽에 낙서를 하고 물풍선을 던지는 식으로써 그들을 거부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런 반응들을 게이인 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여 지는데, 야마자키가 그와 예전에 일했던 직장 동료를 만났을 때 그가 야마자키를 알아보자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의 비난에 대해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이다. 그 스스로도 그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이인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삶이 온전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일까. 자신들만의 기준이 아닌 이성애자들의 기준에서 자신들을 바라본다. 자신들이 선택한 삶인데도 그들은 당당하지 못한 것이다. 루비가 뇌졸중에 걸려서 더 이상 <메종 드 히미코>에서 지낼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루비를 아들에게 보내기로 하지만 그가 게이라는 사실은 끝내 감춘다. 그 모습에 사오리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렇게 가족을 버려놓고 결국엔 자식들에게 떠넘겨 버리는 이기적인 모습에 화를 낸다. 이 부분에서는 어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당장이라도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열악한 재정 상황과 늙은 노인들이 지내는 요양원에서 뇌졸중환자를 간호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한 부분은 끝까지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아들에게 보낸 것이다. 아들이 왔을 때 그들은 평소의 모습, 여장을 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옷을 입고 루비라는 이름 대신 원래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이 게이가 아닌 양 행동을 한다. 그렇게 당당하지 못한 모습일 거라면, 왜 끝까지 숨기며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그 아들이었다면 만약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게이였다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끝까지 사실을 숨기고 당당하지 못한 것에 더 화가 났을 것 같다. 아버지가 게이라는 것이 당황스럽고 충격이겠지만, 아버지 그래도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사셨던 것에 대해서는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런 그들, 타인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본인들 스스로도 당당하지 못한 그들을 이해하는 캐릭터가 바로 사오리라는 캐릭터이다. 사오리는 서서히 마음을 열고 이해해간다. 처음에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들에게 혐오의 마음을 갖지만, 함께 지내고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 점은 그녀의 표정에서 잘 드러나는데 처음에 그들을 바라보는 사오리의 표정은 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듯한 표정이었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그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버지와 서서히 마음을 열어 가는 과정이 나온다. 사오리가 요양원에서 그녀의 어머니의 사진을 발견하는데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후 어머니가 40살이 되어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히미코’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사진에 대해서 물어보며 아버지가 게이로서의 삶을 택하였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했음을 깨닫고 자신과 하루히코의 관계를 통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히미코가 사오리에게 많이 좋아한다는 그 말에 그동안 원망했던 사오리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그녀가 진심으로 그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소통하며 살아가는 과정과 모습에서 실제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느껴졌다. 영화 속 그들의 모습은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단지 사랑의 대상이 다를 뿐이었다. 그 모습이 가장 깊게 와 닿았던 장면은 영화의 중반쯤인데, 회사에 있는 사오리에게 하루히코로부터 연락이 온다. 히미코가 피를 많이 쏟아내었으니 제발 와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 곳에서 하루히코는 자신의 연인이 점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하는데 그의 모습은 그냥 사랑을 하는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 단지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 우리들이 생각하는 어떠한 왜곡도 느낌도 필요가 없었다. 하루히코가 히미코 뿐만 아니라 여자인 사오리에게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데, 그 모습이 그가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게 잘 드러나는 모습인 것 같다.
성적소수자, 동성애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냉담하기가 그지없다. 그들과 어떠한 소통 교류도 없이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편견으로만 판단을 하고 생각을 하며 그들을 대한다. 최근에 어떤 연예인이 활동 중에 성전환수술을 받아서 큰 화제가 되었다. 잠적한 그의 최근근황을 캐내기 위해 몰래 촬영을 하며 뒷조사까지 서슴지 않으며 취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어째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그의 마음이 어떤지 그런 것 들은 안중에도 없이 우리의 단순한 호기심만을 채우기 위한 모습이 그 사람에겐 잔인한 행동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또 최근에 우리학교에 홍석천이 강의를 하러 왔었다. 나는 강의를 듣지는 못했지만 친구를 통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가 처음 커밍아웃을 하게 된 계기는 방송에서 재미로 그에게 남자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했었는데, 그가 그렇다고 응답을 하자 그것을 편집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홍석천은 거절을 했고 그 후에 그가 출연하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그가 나오는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곤 방송에선 그의 성적 성향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어째서 그가 그렇게 되었는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의 심정이 어떠한지에 대한 관심은 아주 작을 뿐이었다. 아니 그 조차도 그의 성적 성향을 크게 부풀려 감추어 버렸다. 그쪽으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들에 대한 편견들이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매체를 통해서 더욱 커지고 그들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의를 듣고 난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은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멋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이었다. 그와 소통을 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그와 함께했던 시간동안에 친구가 가지고 있던 그에 대한 편견이 깨어지고 그를 새롭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그런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사오리가 그들과 지내면서 그들을 사오리의 삶 속으로 자연스레 들어오게 된 것처럼 우리도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그들을 우리의 삶 속으로 녹아 들어오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들의 삶 또한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내 옆에 누군가가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해도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 내 행동들이 있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나와 다른 성적 성향을 가진 그들을 가끔씩 보곤 한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친구와 수군거리며 피하거나 이상한 시선을 보내곤 했다. 그 행동이 내가 마음속으로 진짜 싫다고 느껴서 했던 행동인지,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여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 행동이 그들에겐 상처가 됐을 것은 보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영화를 보고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적인 소통과 대화가 어렵다면 영화나 이런 매체들을 통해서 그들과 간접적으로나마 소통을 하여 그들을 삶속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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