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간 커뮤니케이션, 행복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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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간 커뮤니케이션, 행복 그리고 나
‘대인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강의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강의의 제목을 듣고, 이 수업이 내게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라 생각했다. 더 정확히는 나를 포함한 수강생들에게 이 강의가 타인과 소통하는 ‘기술’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번의 토론이 있을 것이며 조별과제나 발표과제가 있을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찾았던 대인간 커뮤니케이션 강의실에서 나는 그러한 나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강의 시작 10분 만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수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즉 ‘대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가르치는 수업이 맞다. 더 구체적으로는 진정한 대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말이다. 이 진정한 대인간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여기서부터 다른 강의들과 이 강의는 그 방향을 달리하게 된다. 이 강의는 말한다. “진짜 나와 진짜 네가 진정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진짜 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주목해야 할 것은 ‘나’와 ‘너’라는 단어 앞에 ‘진짜’라는 단어가 붙었다는 사실이다. ‘진짜 나’는 무엇을 의미할까?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은 몸과 마음 그리고 ‘진짜 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몸은 경험덩어리다. 그리고 마음은 그 경험을 통해서 쌓인 지식감정의지를 총칭하는 단어다. 이 마음은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데 그 본능이 각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포장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콤플렉스, 미운 점을 숨기고, 그 반대의 것은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아를 우리는 ‘사회적 자아’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각각의 사회적 자아들이 만나서 해온 대화들을 대인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여겨왔다. 이 강의는 그것이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깨우쳐주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알고, 이를 실천할 수 있다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다른 강의들 혹은 다른 사람들도 행복에 이를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까지 그 다양한 길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으나 그냥 무심코 많이 지나쳐왔다. 왜냐하면 그 길들은 많은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라”와 같은 말이 있다. “나는 안 돼.”, “나는 틀렸어.”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보다는 “좋아! 모두 잘 될 거야”와 같은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스트레스와 좌절, 우울함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주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활기차고, 행복한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으로 충분한가? 정말로 힘든 상황 속에 내가 던져졌을 때, 맹목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것은 사실 어떠한 변화도 불러일으키지 못 할 수 있다. 긍정적 사고가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 혹은 동기가 될 수도 있는 반면, ‘이 힘든 상황도 다 잘 해결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자.’라는 식의 나태함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강의를 듣기 전까지 나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다. 나는 교양 중에서 유독 옴니버스식 강의를 많이 들었는데 강연을 해주시러 오는 많은 강사 분들 중 긍정적인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셨던 분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러한 맹목적인 긍정의 부작용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려니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그렇게 얘기하는 데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쪽짜리 답이었음을 이 강의를 듣고서 깨닫게 됐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긍정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무조건적인 긍정보다 사리분별이 있는 긍정을 하라는 뜻이다. 무엇을 긍정해야하고, 무엇을 긍정해서는 안 되는지 구분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합리적 긍정과 비합리적 긍정이 결별하는 지점은 물이 반 정도 채워진 컵을 보았을 때, 남은 반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느냐 아니냐가 되는 것이다.
또 몇몇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마음을 비워내고, 평안을 찾으라고 말한다. ‘무소유’정신도 여기에 해당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것이 행복인가? 행복은 정적이고, 고요하며 전적으로 평온한 그런 상태여야만 하는 걸까? 소설을 원작으로 한 “The Giver:기억전달자”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 범죄와 같은 ‘악(惡)’에 대한 기억이 지워져있다. 그리고 이 ‘악(惡)은’ 실재하지도 않는다. 죽음에 대한 개념도 지워져있어서 죽음 때문에 고통 받거나 슬퍼하지도 않는다. 또한 기억과 함께 이곳의 사람들은 감정 또한 지워져있는데 이는 이곳에 사랑 또한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도 없고, 형식적인 가족만이 존재한다. 더 나아가 환희, 기쁨, 경이와 같은 감정들도 이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반대의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사람들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적성에 맞게 직업을 부여받는다. 그 때문에 부유하고, 가난한 것의 차이도 없으며 사람들은 돈이나 다른 물질적인 것들을 욕망하지도 않는다. 이 세계는 사람들의 기억을 삭제함으로써 만들어진 이상세계-지금과 같은 세계를 없애고, 새로 만든 세계-로 매우 평화롭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가상의 세상 속에 앞서 내가 나열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딱 2명의 사람이 나온다. 이들은 ‘기억보유자’다. 이 기억보유자들은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유일하게 과거의 기억을 가질 수 있으며 공동체가 경험해보지 못 한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새롭게 선택된 기억보유자이고, 과거의 기억보유자로서 주인공에게 기억을 전달해주는 ‘기억전달자’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기억을 전달받음으로써 필요에 의해서 지워진 기억들이-심지어 이곳에는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춤, 노래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음- 유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억과 함께 감정을 돌려받은 그는 친한 친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주인공은 사람들에게 기억을 돌려주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성공하게 된다. 사회의 구성원들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억,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기억, 일상에서 오는 기쁨과 관련된 기억, 태어남과 죽음에 관련된 기억 등 다양한 기억들이 밀려들어옴과 동시에 모두 눈물을 흘린다. 만약 행복이 비워내는 것이고,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면 기억이 지워진 이상세계가 가장 행복한 세계일 것이다. 그렇지만 기억을 지닌 주인공은 그 세계의 행복이 거짓 행복이며 진정한 행복이란 비어있는 것, 단지 평안한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주인공이 다양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기쁨과 환희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주인공의 편에 서서 삶에서 무엇인가를 비워냄으로써 행복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들을 채워 넣음으로써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는 내가 수업으로부터 얻은 큰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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