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 지역감정 배경 호남인 지역감정 비호남인 지역감정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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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
Ⅰ 서 론
지역감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현상이다. 영국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대립, 프랑스·독일· 이탈리아의 남북 갈등, 소련·체코· 유고에서 벌어지는 내전이나 분리 독립운동은 지역감정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어느 국가에서건 지역사회간에 존재하는 갈등은 그 국가의 정치적 안정과 발전에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역 사회적 갈등은 감정적인 것으로 쉽게 타협되지 않기 때문에 합의를 통한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러한 지역사회적인 갈등이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영남과 호남간에 누적되어 왔다. 우리사회의 지역감정은 같은 민족 내부의 문제이며, 끊임없이 어느 사건에 의하여 조장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악용되기 때문에 그 문제에 있어 독특성과 심각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지역감정이라고 불리워지는 영남과 호남 두 지역간의 갈등은 우리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역감정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이를 구명하고 해소하려는 노력은 소홀한 것이 오늘의 실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큰 걱정거리로 자리잡은 지역감정을 하나는 호남인의 비호남인에 대한 지역감정과 다른 하나의 비호남인의 호남인에 대한 지역감정을 통해 알아보고 이러한 지역감정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Ⅱ 본 론
1. 지역감정의 배경
: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의 대표적인 당사자로 흔히 영남과 호남을 들곤 한다. 영호남 갈등이니, 동서 화합이니 하는 말들은 이들 두 지역간에 심리적인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현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역감정은 아마도 1960년대 이후부터일 것이다. 1950년대 자유당 시절까지만 해도 영남과 호남 사이에 지역감정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말 자체도 물론 없었다.
영남지역에 출마한 호남출신 후보자가 당선되는가 하면 호남지역에 출마한 영남출신 후보자가 당선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이후부터 조금씩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계기가 바로 1971년의 대선 즉 박정희·김대중 후보의 대결부터 영남인들은 박정희 후보를, 호남인들은 김대중 후보를 각각 지지함으로써 뚜렷한 양분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권력기반이 더욱 공고해지고 장기집권 가능성이 확실해지면서 호남을 제외한 여타 지역들이 영남 쪽에 적극 가세함으로써 호남 고립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지역감정 문제는 과거 정치적인 산물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1) 호남인의 지역감정
호남인이 영남인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호남인들이 공통적으로 차별과 피해를 받았다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고 있고, 그 가해자로 영남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남인의 피해 의식은 해방 이후 우리 역사에 전개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에서 비롯되고 있다. 첫째는 호남 지역이 1960년대 이래 추진된 경제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지역이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5.16 이후 권력과 부을 차지하고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한 정부와 재계의 엘리트가 대부분 영남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피해의식 혹은 적대감의 근거로 설정되는 위의 두 가지 문제는 조금만 더 따져보면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문제인 개발과정에서 나타난 소외의 문제는 충청이나 강원지역에도 해당되는데 왜 유독 호남인들만이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게 되는지를 설명해 줄 수 없다. 두 번째 문제인 지배 엘리트의 충원 문제 또한 인구비를 고려하더라도 영남이 다른 지역에 비해 과대 진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유독 호남에 대한 차별이라고 볼 까닭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역갈등 문제의 핵심은 왜 영남에 대한 특권이 발생하였는가의 문제로 설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많은 경우 호남에 대한 차별을 부각시키는 논리의 비약 아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고 보여 진다.
영남에 대한 특권이 발생하게 된 까닭은 여러 가지 입장에서 접근이 가능하나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측면은 한국전쟁이 남한사회의 구조화에 미친 영향이다. 한국전쟁에 관해 1989년 조사연구는 전쟁 당시 북의 침략에 맞서 장교나 사병으로 국군쪽에 참전한 비율이 지역적으로 달리 나타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전국평균(35%)보다 영남지역(41%)이 높고 호남지역(27%)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므로 전쟁이 끝난 후 남한의 정권이 전쟁에 참여한 집단을 선택적으로 보상하는 과정에서 영남출신이 상대적으로 유리하였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더욱이 참전세력이 중심이 된 남한의 지배구조가 전쟁이후 30년이 넘도록 지속되었으므로 영남의 특권적 위치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참전율의 지역적 차이로 인해 전쟁 후에 구축된 남한의 지배질서가 영남의 특권을 담보해 주는 형태로 구조화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영남의 특권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의 정도가 호남인의 경우에서만 높게 나타나고 나아가 적대감으로까지 전환되고 있는가? 이 문제의 설명에 빠질 수 없는 사건이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이다. 광주사태로부터 출발점을 찾을 수 있는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기존의 지배질서, 즉 영남중심의 참전세력에 의한 정권의 지속을 거부한 저항운동이었다. 민주화운동은 결국 국민적 동의를 얻어 일정한 결실을 맺었지만, 그 과정에서 호남인이 겪은 피해는 광주로 상징되어 아직도 아픔으로 남아 있다. 물론 광주사태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호남인이었고, 그 사회적 결과는 영남의 특권을 보장하는 지배질서의 정당성에 돌이킬 수 없는 도덕적 흠집을 가져온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호남인들은 그들의 상대적 소외의식을 바로 영남 사람에 대한 적대감으로 전환시키는데 주저함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광주사태와 같은 특수한 경험을 겪지 않은 충청이나 강원지역 출신은 영남인에 대한 적대감이 호남인만큼 강하지 않은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또한 광주사건이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적대감의 형성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은 1980년 이전에 지역감정을 연구한 문헌들에 의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1977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호남인들은 자기 자신들 이외에 제일 좋아하는 지역민으로 영남인을 꼽고 있었다. 그러므로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적대감은 사회구조적으로 영남인의 특권적 위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러한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광주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호남인이 됨으로써 발생하게 된 복합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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