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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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알게 되었던 때는 20살 때였다.
고교시절에 미대 입시를 했던 나는 학교 교과서나 미대입시관련 도서를 제외하고는 독서량이 현저히 낮았었다. 1년간의 입시를 하고 원하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대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다.(재수를 원했으나 어머니가 몰래 등록금을 넣어 두신 까닭에) 하지만 봄이 채 다 가기도 전에 그림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곤 이듬해에 다른 학교를 가기 전까지 약 8개월가량의 시간이 붕 떠버리게 되었다. 그다지 공부를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이것저것 일을 찾아서 했고 여기저기로 놀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내 돈으로 처음 책이란 걸 사게 되었는데(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굉장히 충동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좋아해서 수시로 읽는 책, 그리고 주인공의 기숙사 선배 나가사와(작가가 죽은 지 50년이 지나지 않은 책은 읽지 않는다는, 이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예외적인 책이었다.)가 좋아하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이라면 나의 친구가 될 수 있지.” 라고 주인공에게 말하는 그 책이 ‘위대한 개츠비’였다. (1학기때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에도 ‘위대한 개츠비’가 거론됐다.)
와타나베가 개츠비를 읽던 것처럼 상실의 시대를 심심할 때 마다 꺼내어 보던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꼭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그 생각이 의무감으로 다가 왔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읽었다.
20살에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그냥 ‘읽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책의 대체적인 줄거리를 기억하는것이 신기할 정도로 활자만을 읽었었다. 분명 읽으면서 그 뭔지 모를 의무감에 사로잡혀서 그랬을 수도 있던 것 같다. 군대에 있었던 22살 때도 개츠비를 읽으려고 시도를 했었다.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 내에서 책에 집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책들에 비해 개츠비는 유난히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이었다. 결국에는 절반정도의 활자를 읽다가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 27살이 되어서 세 번째로 시도를 했고 이 세 번째 시도를 한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나는 이미 읽은 책을 또 보는 것이나 본 영화를 또 보는 것처럼 이미 본 것을 반복해서 보는 것을 새로운 것을 보는 것 보다 더 좋아한다. 하지만 다시 읽기에 실패했던 개츠비를 다시 읽으려 했다니.......내가 사랑스러웠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것에 대해서 나의 가장 커다란 느낌은 ‘공감’이었다. 처음 개츠비를 읽은 이후 7년이 지났다. 그 7년 동안 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직접’경험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가 개츠비를 이해하고 나중에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공감을 가져다주었다. 이전에 첫 번째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왜 개츠비가 위대했는지 궁금해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궁금증에 대한 질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아니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지금의 나의 상황과 굉장히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생각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언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시선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빠르게, 때로는 차근차근 다가가는 그의 모습에서 동물과 같은 순수함이 있었고 그것이야 말로 내가 꼭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서였던 것 같다.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웨스트 에그의 저택에서 매일 파티를 열고 만 건너편 이스트 에그의 데이지의 초록불빛을 항상 바라보고 동경했다. 그리고 그 동경은 데이지라는 현실의 사람보다 커지고 더 커지고 커졌다. 때문에 데이지와 다시 재회했을 때 오히려 그 동경이란 것이 사라져 버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언가 시원하면서도 씁쓸했다. 아직 완벽히 대상을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기를 원하면서 지내온 인고의 삶속에 동경이라는 것은 분명해 개츠비의 삶속의 행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내가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도달하기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자체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처럼.
개츠비는 데이지를 차지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목표에 다다르고 달성을 한 것일까? 이부분은 내가 아직 많이 생각을 해봐야 할 부분같다.
톰의 눈앞에서 개츠비는 데이지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냈고 그녀의 소유를 주장했고 데이지를 통해 그녀와 톰과의 사랑을 부인하게 만들었다. 물론 금방 번복하여 그는 순간적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후에 그건 그 분위기가 만들어낸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도 농후한 그 상황에서...
데이지와 개츠비가 몰던 차의 뺑소니로 머틀은 죽은 후에도 개츠비는 데이지를 보호하려한다. 그리고 결과 적으로 보호했다. 그 죽음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위대한 죽음이라고 느꼈다. 그 동안 자신을 보호해 왔던 그를 쌓아왔던 자신과 그녀의 생각, 그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에 정말 개츠비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하지 않았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데이지라는 여자 자체가 개츠비를 결과적인 파멸로 이끈 것처럼 보이지만(돈을 벌기위해 주류 밀매업과같이 불법적인 행위를 일삼기도 했으니)결과적으로 그건 개츠비 자신에게 있어 나쁜 일이 아니다. 개츠비의 죽음은 파멸도 아니다. 죽은 후의 장례에 참석조차 꺼리는 사람들, 그건 아무 의미없는 것이다. 사람이 죽은 후 가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을까? 개츠비의 친구 울프심의 “죽은 뒤가 아니고 살아 있을 때 우리의 우정을 보여주는 걸 배웁시다.” 라는 말을 캐러웨이의 입장에서는 인색하고 보기 싫었겠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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