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41)
진표가 간자를 전하다 진표가 금산사에서 스님이 된 후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수도를 하여 미륵보살에게 불경과 간자를 받은 내용, 물고기와 자라에게 설법을 한 일화와 그의 제자들에 대한 설명을 기록.■ 관동풍악의 발연수 비석의 기록진표율사의 수도에 감응한 자장 보살과 미륵보살이 계법을 준
14페이지 | 1,400원 | 2006.02.21
진표율사(律師)의 관자 189枚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심지 이후에도 점찰교법의 계승자가 이어 나오다가 신라가 망함으로 인하여 그 맥이 사라져갔다. 진표 이후의 점찰교법의 계승과정을 보면, 자신이 얻었던 경과 간자를 물려줌으로써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도구의 대물
4페이지 | 800원 | 2005.12.05
율사’(律師)라는 전통적 호칭은 타당하다. 자장은 불국토인 신라에서 문수보살을 친히 보고자 태백산오대산 등지를 순례하였다. 이것은 감통(感通)을 중시하는 자장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인데, 절대적인 신앙에 귀의함이 없이는 계를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도선의 태도와 서로 통한다. 자장은 통도
20페이지 | 1,300원 | 2005.12.05
진표율사가 구리로 주성하여 내려오다가 조선 후기 대원군 때 파괴되어 1967년 철근 콘크리트로 조성되었으나 낡아서 1989년 높이 33m의 세계 최대 청동불상으로 만들어졌다. 내속리면 상판리에는 에밀레 박물관이 있으며, 보은읍 성주리에는 일제강점기 때 보은지역에서 활동한 의병들의 재판 판결문
47페이지 | 2,100원 | 2005.08.26
진표 율사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24년(인조 2년) 벽암대사가 중건하였다.1968년 해체, 중수공사 때 중심기둥 밑의 심초석에서 사리구와 명각 동판이 발견되어 건립 년대를 알게 되었으며, 목탑에서의 사리봉안 내용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의 일생을 팔 폭의 그림으
6페이지 | 1,400원 | 2005.07.07
진표조사를 잇다승려 심지는 영심이 진표율사의 간자를 이어받아 과증법회를 연다는 말은 듣고 찾아갔으나 늦어서 참여치 못하자 뜰에서 예불을 드리며 참회를 했더니 지장보살이 매일 나타나 그를 위문하였다. 법회가 끝나고 간자가 자신의 품 속에 있는 것을 알고 영심에게 아뢰지만 영심은 그 것
30페이지 | 1,800원 | 2005.02.03
율사가 그의 스승 진표율사로부터 물려받은 불골간자를 가지고 과증법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참예하러 갔다.그러나 이미 때가 늦어 법당에 올라가 참예할 수 없었다. 찬겨울에 7일 동안 땅에 자리를 깔고 참예하던 중에 7일이 지나자 큰눈이 내렸다. 하지만 심지가 앉아 있는 둘레 10자쯤만눈이
21페이지 | 1,500원 | 2004.06.30
진표는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에게 淨戒와 佛骨簡子를 받고, 또한 미륵보살에게서는 후세에 大國王의 몸으로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다. 그는 적극적인 교화를 펴 金山寺를 중창하고 명주지방에 鉢淵藪를 창건하였다.(《三國遺事》 卷4, 眞表傳簡 및 關東楓岳鉢淵藪石記) 위 (가)에서 (마
172페이지 | 0원 | 2004.05.19
진표율사(眞表律師)의 장법 卷第四, 義解 第五,條신라때 樹上葬의 기록은 많이 찾을 수 없으나, 진표율사의 이야기에 그 잔영을 찾을 수 있다. 에 진표율사는 12세에 출가하여 갖은 고행으로 수도하여 천안을 얻고 마침내 도솔천중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13페이지 | 0원 | 2004.05.19
진표율사(眞表律師, 7세기 중기 활동)의 예가 대표적이다. 그가 아버지와 함께 도업(道業)을 닦으면서 효도를 다 하다가 어느 날 절 동쪽의 큰 바위에 올라가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은 그 시체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공양하다가 해골이 부서질 상태가 되자 무덤을 만들어 그것을 안치시켰는 데 그
25페이지 | 0원 | 2004.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