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업적과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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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03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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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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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작가 소개
Ⅱ. 감상문
Ⅲ. 인상 깊은 구절
Ⅳ. 神格 카이사르의 연대기(기원전)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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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자 카토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였고, 때로는 위협이 되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글에 나타나 있는 천재성의 증거는, 그 글이 비록 선전을 위해 쓰였지만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글의 평범한 목적을 간파한 독자라 하더라도 그 글을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카이사르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지적·육체적 정력이다.
그는 갈리아에서 일어난 중대한 반란을 아직 진압하지 못하고 있을 때인 BC 51년에 갈리아 정복에 관한 7권의 책을 출판할 준비를 했고, BC 49-44년의 바쁜 시기에도 내전에 관한 책과 <안티카토>를 썼다. 그의 육체적 정력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BC 57-56년 겨울에 시간을 내어 갈리아키살피나만이 아니라 3번째 속주인 일리리아까지 방문했다. 그리고 BC 55년 원정과 BC 54년 원정 사이의 막간에는 갈리아키살피나에서 공무를 처리하고, 오늘날의 알바니아에 살던 난폭한 부족 피루스타이족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리리아로 갔다.
BC 49년에는 그해의 전투기간이 끝나기 전에 루비콘에서 브룬디시움까지 행군했고, 다시 브룬디시움에서 스페인까지 행군했다. 53세 때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뛰어난 수영 솜씨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면했다. 카이사르의 육체적 정력은 그의 난잡한 성생활이 부분적으로 설명해줄 것이다. 그의 방탕은 당시의 그리스나 로마의 기준으로 보아도 정상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동방을 처음 방문했을 때 비티니아 왕 니코메데스와 동성애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이 소문은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믿을 만했고, 카이사르가 동성연애자라는 소문은 생전에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카이사르의 이성연애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연애 상대는 대부분 유부녀였다. 아마 카이사르는 이런 정사를 사소한 오락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2번은 그의 경력을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불장난에 빠졌다. 폼페이우스의 아내 무키아와의 관계가 사실이라면 그는 폼페이우스와 맺은 협상을 위험에 내맡긴 셈이다.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는 무키아와의 관계만큼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훨씬 악명이 높았다.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짐으로써 파르살로스에서 얻은 명성을 잃어버릴 위험...
- 참고문헌
- 로마인 이야기 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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