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정치사상] 오토 대제, 오토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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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보편주의 이데올로기 성립의 배경

2. 오토 대제의 제국통치 이데올로기

1) 오토 대제와 로마적 보편주의
2) 황제 대관의 의미는 무엇인가?

3. 오토 3세의 제국통치 이데올로기

1) 오토 3세의 제국통치의 전개
2) 오토 3세의 제국 통치의 발전: 이탈리아 정책
3) 오토 3세는 보편주의 이념을 목적으로 보았는가 아니면 수단으로 사용하였는가?

4. 오토 1세와 오토 3세의 제국 통치의 비교

5. 결 론
본문내용
1. 보편주의 이데올로기 성립의 배경

위대한 샤를마뉴의 제국은 그의 아들 루이 1세까지는 그 명맥을 유지하였지만, 그 후손들의 영토분쟁은 제국에 혼란을 가져왔고,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왕국은 3지역으로 분열되었다. 또한 9세기 후반, 마자르족과 바이킹족의 침입으로 인해 혼란은 가중되었고 이에 대한 각 지역의 대응책이 상이한 제도와 질서를 형성했다. 이는 종전의 프랑크전역이 지녔던 깊은 동질성 위에 각 지역의 특수성을 부여하는 요인이 되었다. 백성들에게 있어 더 이상 기존 카롤링 질서에 의존하는 것은 무의미했고, 대신 백작들의 성벽과 군사가 실질적인 보호를 수행했다. 서프랑크 지역은 이미 발달되어 있던 카운티조직을 중심으로 봉건적인 질서가 확립되어, 왕은 형식적인 서열상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반해 동프랑크 지역은 대가문을 중심을 부족단위로 분견대를 결성하였다. 공작이라는 칭호를 지니고 독립적인 지위를 확립한 5개의 부족공국이 출현하였으나 이들은 공동의 왕을 인정하고 있었고, 이들의 지위 또한 법률적으로 규정되었다기보다는 왕의 능력에 따라 변화 가능한 것이었다. 중프랑크는 자체적 대처능력의 부재로 외세에 의존하여 훗날 외세의 간섭과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동프랑크 지역에서는 작센가의 오토 1세가 왕으로 즉위했고, 이탈리아 원정과 마자르족의 격퇴 등을 통해 군사적인 명성을 얻어 962년, 베렌가르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 보답으로 교황 요한네스 12세는 오토를 황제로 추대한다. 이로써 ‘독일인의 신성로마제국’ 즉 독일의 제 1제국이 출범하였고, 독일이 중세 황제국가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독일 제국의 창설을 뒷받침하는 이념은 어떻게 과거의 영향을 받았으며, 또 어떠한 새로운 제국통치 이데올로기의 특징을 가지는지, 그리고 오토 대제에 이르러 새롭게 나타난 제국의 개념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여러 사가들의 평가처럼, 오토 제국이 이전 프랑크왕국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특징만을 갖고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오토의 왕위계승 장면을 살펴봄으로써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토는 프랑크적인 전통에 따라 그의 부왕 하인리히 1세로부터 미리 지명을 받았다. 오토의 실질적인 지지세력은 작센인들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프랑크인들을 동등한 위치에 언급, 왕권의 전통성을 강조했다.
참고문헌
< 참고 문헌 >

강치원, 중세의 정치적 갈등 (강원대학교 출판부, 1989)
김광채, 중세교회사 (신성, 2002)
이경구, 중세의 정치 이데올로기 (느티나무, 2000)
David Herbert Lawrence, 역사, 위대한 떨림 (민음사, 2002)
Martin Kitchen,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독일사 (시공사, 2001)



< 참고 자료 >

네이버 : http://www.naver.com
보스톤 컬리지 홈페이지 : http://www.bc.edu
위키피디아 : http://www.wikipedia.org
한국의 성지 : http://www.pax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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