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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藥局을 계승한 것으로서, 조선 초기에 內藥局 또는 藥局이라 하던 것을 세종 25년 이조의 건의로 내의원이라 개칭하고 정원 16명을 두었다. 내의원은 국왕을 비롯한 왕족의 치료와 어약의 조제가 그 임무였지만, 궁중은 물론 종친 및 2품 이상 고관의 치료도 담당하였다. 내의원 의관은 왕실과 가까이
10페이지 | 1,000원 | 2012.08.25
尙藥縣)으로 개칭되어 밀성군(密城郡 : 지금의 밀양시)의 영현이 되었다.〔고 려〕 940년(태조 23)에 화왕군이 창녕군(昌寧郡)으로, 현효현이 현풍현(玄豊縣, 또는 玄風縣)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상약현은 영산현(靈山縣)으로 고쳐져 밀성군의 속현으로 남았다. 1018년(현종 9)에는
35페이지 | 800원 | 2003.10.22
[고려시대의 사회복지] 의료구제 대책(혜민국, 동서대비원, 제위보, 동서제위도감, 구제도감, 구급도감, 진제도감, 해아도감)
尙藥局)이 왕과 왕실의 의약을 담당하고 태의감이 관리들을 치료했던 것에 반하여 혜민국은 서민들을 위하여 설치된 것이다. 예종 7년(1112)에 처음으로 혜민국이 설치되고 판관 4인의 직관을 두고 본업과 산직으로서 차등적인 직제를 편성하였다. 원래 혜민국이라는 것은 송나라 때 7개소의 약국이 설치
6페이지 | 2,500원 | 2020.07.30
尙藥局」銘靑磁陰刻雲龍文盒) 보물 1023호왕실의 약을 보관하던 그릇이다. 뚜껑 윗면에 구름과 용의 무늬를 음각하였고, 뚜껑과 아래 그릇이 맞닿는 부분에 아래위로 “상약국”이라고 새겼다. 상약국은 왕실의 약을 제조하던 관청이다. 주로 환약을 보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귀면청동로(鬼面靑銅爐
4페이지 | 800원 | 201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