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사] 조선의 아름다움 분청사기와 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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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분청사기
1. 정의
2. 언제
3. 어디서
4. 누가
5. 어떻게, 무엇으로
6. 왜


III. 백자
1. 정의
2. 언제
3. 어디서
4. 누가
5. 어떻게, 무엇으로
6. 왜


IV. 분청사기와 백자의 비교

V. 결론
본문내용
조선시대의 또다른 자랑은 백자다. 조선 초기 나라 안에는 무려 324개의 도자기 제작소가 있었다. 그중 국가에 납품할 수 있는 양질의 자기소는 4곳 뿐이었다. 그리하여 경복궁 내 부엌일을 맡아보는 사옹원(司饔院)이 서울에 가까운 광주에 분원을 차려놓고 질좋은 백자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15세기 후반부터는 청화백자 위주의 중국 백자와는 사뭇 다른 조선 특유의 백자를 만들게 된다. 백자는 순백색의 바탕흙 위에 투명한 유약을 씌워 구워내는 자기로서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룬다. 백자는 무늬나 물감의 종류에 따라 순백자와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린 다음 백색유약을 씌우는 청화백자, 산화철안료로 무늬를 그린 다음 백색유약을 씌우는 철회(鐵繪)백자, 산화동 채색안료인 진사로 그림을 그린 후 백색유약을 입히는 진사백자 등 몇 가지로 나뉜다.
조선백자는 시기별로 특색을 보이면서 우아한 자기변신을 거듭해왔다. 비록 얼마간 중국 청화백자 기법의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빛깔이나 조형에서 중국의 것을 훨씬 능가하는 조선식 세련미를 보이면서 발달했다. 천하의 명품이라고 하는 ‘백자청화 망우대(忘憂臺)명 잔받침’(16세기)은 청초한 들국화와 벌 한 마리가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고, 잔이 놓인 한가운데에는 ‘망우대’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이 받침대에 올려놓은 술잔을 드는 순간 ‘근심을 잊어버리는 받침대’라는 글귀를 읽게 되니, 얼마나 풍류가 흐르는 멋진 구도인가. 조선백자의 기발함을 말해주는 예로 ‘백자 달항아리’(높이 42.5cm, 18세기 전반)를 들 수 있다. 원래 수동식 물레로는 큰 항아리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중국이나 일본, 유럽의 도자기 중에는 조선의 달항아리만큼이나 큰 항아리가 없다. 조선의 도공들은 커다란 대접 두 개를 서로 잇대어 둥그스름한 큰 그릇을 만들어냈다. 그릇 가운데에 이은 자국선이 있는데, 그 선은 컴퍼스로 돌린 딱딱한 기하학적 원이 아니라 자연스러우면서도 넉넉한 둥근 자국이다. 때로는 기우뚱한 것도 있지만, 도공들은 그것마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너그러움의 형태미와 어진 선맛, 따뜻한 흰색에서 오는 정감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항아리를 보면 부잣집 맛며느리를 보는 것처럼 넉넉함을 느낀다고 했다.
참고문헌
-한겨레신문 2005년 4월 18일자 정우일 교수
-서울신문 2005년 3월 30일자
-네이버 백과사전 검색 : 분청사기, 백자
-네이버 백과사전 : 아이디 ethnos44님의 글, 조선백자에 대한 연구
-네이버 지식인 검색 : 아이디 songhorang님의 글
-네이버 지식인 검색 : 아이디 tjwhrrocjr님의 글
-http://user.chollian.net/~kdhgadin/2-26.htm#분청사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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