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친숙한 조선후기 화가, 김홍도의 작품들을 서적이 아니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과제를 떠나 나에게 긴장감과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인이라면 초, 중, 고 교과서나 미디어를 통해서 여러 번 접해봤을 친숙한 화가기 때문이다.
이 유명한 그림을 실제로 본이들이 대한민국 국민 중에 몇이나 있을까? 나 또한 이를 계기로 이제야 보게 됐으니 말이다.
직접 보고 느끼며 작가와의 생각과 의도를 각기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작가와의 간접적인 대화와 호흡으로 배우고 느끼는 식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방법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획일화 된 그림과 설명들로 똑같은 생각만 주입시키는 식이였다. 타국보다 문화재나 예술품들에 대한 관심이 적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교수님께서 언급하셨던 간송 미술관의 열악함은 실제로도 심각했다. 우선 교통편을 알 수가 없었다. 초행길인 탓도 있었지만 작은 안내 표시도 없었고 택시 기사 아저씨들도 거의 다 모른다고 하셨다. 국보나 보물 사진 아래에 ‘간송 미술관 소장’ 이런 글을 흔히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행히 사전에 인터넷 자료 검색으로
간송미술관소장인 장승업의 「삼협도(三俠圖)」에 안중식이 1916년에 써넣은 발문(跋文)이다. 바로 ꡒ신묘년(辛卯年,1981) 봄에 내가 오원 선생을 찾아뵈었을 때에 마침 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ꡓ고 증언한 기록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역시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를 1914년에 보고 증언한 발문으로 여기서는 ꡒ이 그림은 나의 장오원(張吾園) 선생이 중년에 그린 것이다.ꡓ라고 썼다. 이구열, 전통의 계승, 근대한국화
미술품들은 대부분 박물관에 전시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박물관에서도 많은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미술관의 설립은 현재에 와서 두드러지는 현상인데, 한 개인이 과거부터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발표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주로 만들어지고 있다. 전자의 예는 우리가 이번 보고서에서 다루게 될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세운 ‘간송미술관’이고, 후자의
전만해도 우리나라는 부강하지 않아 여러 나라와 수많은 전쟁과 약탈로 인해 우리 소중한 문화재들이 훼손되었고 많은 것들을 빼앗겼다. 현제 아직도 돌아 오지 못한 문화재들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책에서 일제 강점기 때 문화재로 나라를 지킨 간송 전형필선생님께서는 나라를 위해 우리나라 문화재를 모으기 시작하셨다 명작을 수집하는 일은 막대한 경제력 뿐 만 아니라 미와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지극한 정신이
미술관의 존재를 몰랐었는데 이번 수업시간을 통하여 좋은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학교와 같은 성북구에 위치하여 버스를 타고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이날도 창덕궁 답사 때처럼 맑은 날씨로 답사하기 좋았다. 우선 간송미술관에 대해서 알아보자.간송미술관은?간송미술관은 전형필(全鎣弼)선생이 1938년에 설립하였다. 대지가 4,000평으로 도시속에 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주위가 한적하고 조용하다. 미술관의 중심건물인 보화각에는 전
전시기간이며 또 바람의 화원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대다수 소유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을 최대한 배려하고 미술관의 전시 특성을 고려하여 3개월 정도가 전시기간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③ 간송미술관의 협조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간송미술관’의 소장품들을 양해를 구하여 전시회에 내걸 작품들을 얻어 오는 것이다. 간송미술관에는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김홍도의 다양한 사군자그림이나 ‘황묘농접’과 같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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