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론]三國遺事(삼국유사)에 나타난 新羅 社會(신라사회)의 文化(문화)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5.05.12 / 2019.12.24
- 18페이지 / hwp (아래아한글97)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2,700원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추천 연관자료
- 하고 싶은 말
-
삼국유사에 나타난 문헌기록을 통하여 화백제, 귀족사회의 모습, 불교, 민간신앙, 고유신앙, 결혼제도 및 결혼생활, 놀이와 풍속, 의복, 죄와 형벌의 모습을 재구하여보았습니다.
- 목차
-
Ⅰ. 新羅 和白制
Ⅱ. 新羅 貴族 社會(三國遺事 第 1卷 紀異 第 1 四節遊宅, 辰韓)
Ⅲ. 新羅의 宗敎 - 佛敎와 固有信仰, 民間信仰
Ⅳ. 신라의 結婚 制度 및 結婚 生活
Ⅴ. 놀이와 풍속
Ⅵ. 신라 시대의 衣服
Ⅶ. 신라 시대의 罪와 刑罰
- 본문내용
-
Ⅰ. 新羅 和白制
6부의 조상들은 '위로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없는 까닭에 백성들이 방종한다'면서 '덕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고 나라를 세워서 도읍을 두어야한다'는 내용의 회의를 한다. 즉, ③, ⑥, ⑧의 내용을 통해서 和白會議에서는 왕을 추대하고, 왕비를 정하는 등의 국가의 대사(大事)가 의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은 구체적으로 화백회의라고 설명되지는 않지만 6명이 모여서 국사를 의논하였다는 데에서 和白會議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알천공이 수석(首席)에 앉았다는 것을 보아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Ⅱ. 新羅 貴族 社會(三國遺事 第 1卷 紀異 第 1 四節遊宅, 辰韓)
신라 전성기에 서울 안에는 17만 8936호, 1360방(坊), 55리(里), 35금입택(金入宅)이 있었다. 여기서 금입택(金入宅)은 부유한 큰집을 뜻한다. 49대 憲康王 때를 살펴보면 四節遊宅이라는 것이 있었으며, 그 당시 서울 안에는 초가집이 하나도 없고 집의 처마와 담이 서로 닿았으며, 길에 노래소리가 가득하여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절유택이라는 것은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에 재상들이 놀이하던 별장'이었다. 즉, 憲康王 시대에는 귀족들의 사치를 보여준다. 또한 성 안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통해 서울이 매우 번영했음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이 역시 귀족들의 사치스러움을 잘 나타내준다. 또한 귀족들은 사치 뿐 아니라 풍류를 즐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길에 노랫소리가 가득할 뿐 아니라 그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귀족들은 사치 뿐 아니라 풍류를 즐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Ⅲ. 新羅의 宗敎 - 佛敎와 固有信仰, 民間信仰
『三國遺事』의 感通편에는 부처와의 영적 감응(感應)을 이룬 일반 신도들의 영감이나 영 이(靈異) 등을 다룬 설화들이 각각 실려있다.
불교의 최고 도달 목표는 해탈 혹은 극락으로 가는 것이다. 극락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三國遺事』 곳곳에는 불교의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련 방법이 드러나 있다. 그 첫번째 방법이 끊임없이 염불을 외는 것이다. 郁面의 경우 승려를 따라 염불을 외기도 하며, 주인에게 벌을 받으면서도 손바닥을 뚫어서 새끼줄로 꿰는 고행을 감수하며 염불을 외고 종내에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②∼⑤). 또한 보천의 경우 역시 수구다라니(隨求 羅尼)를 계속해서 외운다.(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라시대에는 남자들이 대부분 불도에 입문하였으며 끊임없이 염불을 외거나 입산을 하여 세속과의 연관을 끊고 수련을 하거나 단정한 자세를 하고 정신 수련을 하였다.
Ⅳ. 신라의 結婚 制度 및 結婚 生活
마지막으로 신라 사회에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을 경우 양자를 들일 수 있었다. 임종에게는 사자(嗣子)가 없었는데, 비형랑이 진평대왕에게 소개시킨 길달(吉達)이란 자를 그 양자로 들였다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⑧)
『三國遺事』에 따르면, 김유신의 막내 누이 문희가 태종 춘추공과 결혼을 함으로 태종은 김유신의 매제(妹弟)가 된다.(③) 다음으로 『三國史記』에 따라 김유신의 가계도를 보면, 김유신의 아내 지소부인(智炤夫人)은 태종의 셋째 딸이다. 즉, 태종은 유신의 장인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신의 입장에서 태종은 매제인 동시에 장인인 것이다. 참으로 복잡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근친혼은 왕실에서 자주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경문대왕이 동생을 아내로 택하지 않고 언니를 택한 후, 왕이 되었는데 그에 대해 범교사가 쉽게 동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⑤) 언니와 동생을 비(妃)로 취하는 예가 많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라 왕들에게 아내가 여럿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게 된다(⑤).
- 참고문헌
-
『三國遺事』 일연 著, 최호 譯 홍신문화사 1991
『三國史記』 김부식 著,
『한국복식문화사』유희경 外 교문사 1998
『한국의 복식문화』최해율 外경춘사 1993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 사전』1994
『두산 세계 대백과 사전』1996
자료평가
-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최근 판매 자료
- [현대문학]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시대적 의미와 시사점
- [국문학] 한국문학의 시대별 구분과 특징
- 상담윤리의 필요성과 상담자 윤리적 문제의 유형에 대해 작성하시오
- 한국어 음운 교육론 자음
- 만 0세 4월 보육일지 1-4주
- 만 0세 3월 주간보육일지
- [인간관계론]인간관계론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를 읽고 <‘나’라는 치료자 ‘나’라는 내담자>
- 한국사_고려시대 문벌귀족과 권문세족에 대해서 설명하고 본인이 고려의 인종이었따면 이자겸의 난과 묘청서경천도운동(난)을 어떻게 대처했을지에 대해서 논하시오
- 감사성향 개념 정리
- [일본현대문학문화] 유미리의 `가족시네마` 작품분석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