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론] 만해 한용운의 생애와 시적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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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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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1. 시인으로서의 한용운
2. 생활인으로서의 한용운
3. 종교인으로서의 한용운
4. 독립운동가로서의 한용운
5. 한용운의 사상
II. 본 론
1. 한용운의 시와 기다림의 역사성
1.1 이별과 사랑의 자발성
1.2. 기다림과 영원함과 적극성
1.3. 절망과 역사적 전망
2. <님의 침묵>대한 해석학적 접근
III. 결 론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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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만해 한용운(1879. 7.12~ 1944. 5. 8.)은 근대의 스님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용운(龍雲)이며, 별호는 만해(卍海, 萬海)이며, 자는 정옥(貞玉), 이름은 한유천(韓裕天)으로 우리에게는 만해 한용운으로 더욱 잘 아려진 스님이다.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으로서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항일투사이자 <님의 침묵>을 쓴 시인으로,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고 있는 항일투쟁의 표상이다.
한용운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욘양방씨 사이의 둘째아들로 1879년 7월 12일(음)에 태어났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아홉 살 무렵에는 서상기, 통감, 서경, 기삼백주 등을 읽는 조숙함을 보였다. 당시의 충속이 그러했듯이 그도 14살에 천안 전씨와 혼인하였고, 18세에는 향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출가하여 백담사 등지를 편력하였다. 26세에 잠시 고향에 들렀다가 다음해에 다시 백담사로 가서 김연곡 스님으로부터 득도하여, 그곳에서 임학임 스님께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배웠다.
1907년 29세 때 강원도 건봉사에서 처음 선수업을 하였고, 그 다음 해에는 강원도 유점산에서 서월화스님께 화엄경을 배웠다. 그해 4월 일본으로 건너가 조동종 스님들과 교류하고 유학 중이던 최인 등과 교유하고 10월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10일, 서울 경성명진 측량 강습소를 개설하고 소장에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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