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사회] 조선시대 재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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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2.03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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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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ꁶ 본문에 들어가며......
⇒ 조선시대는 충․효 사상을 바탕으로 한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모든 백성들에게 효행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일과 분묘를 지키는 일이 가장 민감한 문제였다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시대 현실을 반영하듯 조선시대에는 민사분쟁 중에서도 묘자리와 관련한 분쟁, 즉 묘와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산과 관련한 분쟁인 산송(山訟)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조선시대의 사법제도는 고려의 제도를 유지하면서 점차 변화하였고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민사와 형사가 완전히 분화되어 있지 못하였다. 조선시대의 재판은 옥송(獄訟)과 사송(詞訟)으로 구별되는데, 옥송은 오늘날의 형사상의 범죄를 다루는 재판이었고, 재판의 종국적 목적이 공형벌(公刑罰)을 과하는데 있었다. 사송은 오늘날 개인의 생활관계인 민사상의 분쟁을 다루는 재판을 뜻하며 그 종국적 목적은 분쟁의 해결에 있었다.
(모든 사송의 경중의 차는 있으나 형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형사적 소송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 국왕의 세속권(왕은 최고재판관이었나?)
조선시대의 왕은 최고입법자임과 동시에 최고재판관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민․형사상의 판결권은 최종적으로 왕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왕은 반역죄인들을 직접 심문하고 처벌했으며, 사형수와 같은 중범죄인들의 최종판결도 왕이 했다. 왕이 최고재판관이었기에 민․형사상의 민원으로 왕은 골머리를 썩이기도 했다. 지방 수령이나 관찰사가 내린 판결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이 상소나 격쟁(조선시대 원통한 일이 있는 사람이 임금의 거동길에 꽹과리를 쳐서 하문을 기다리던 일)을 통하여 직접 왕이 판결해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 참고문헌
-
- 조선의 왕(조선시대 왕과 왕실문화) 신명호 지음.
- 법률가의 윤리와 책임 박영사 펴냄.
- 조선의 성풍속 정성희 지음.
- 보령문화 제12집 (2003년 12월 26일 발행)
- 조선시대 이혼에 대한 규제와 그 실상 장병인(충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 네이버 지식in
- 한국문화콘텐츠닷컴(http://www.culturecont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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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9 20: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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