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의 생애와 시 세계 연구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5.14 / 2015.05.14
- 30페이지 / pptx (파워포인트 2007이상)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900원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추천 연관자료
- 목차
-
1. 김수영의 생애
2. 김수영의 시 세계
-눈
-폭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풀
- 본문내용
-
김수영의 생애
1921년 - 11월 27일(음력 10월 28일) 서울 종로2가 관철동 158번지에서 출생
-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 8남매 중 장남
- 부유한 집안 -> 일제 토지조사의 여파로 가세 기울어짐
1924년(4세) - 조양(朝陽) 유치원에 들어감
1926년(6세) - 이웃에 사는 고광호(高光浩)와 함께 계명서당(啓明書堂)에 다님
1928년(8세) - 어의동(於義洞) 공립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에 들어감
1934년(14세) - 보통학교 재학 6년간의 높은 성적에도 불구 장티푸스, 폐렴, 뇌막염을 앓음
- 졸업 하지 못한 채 1년여의 요양 생활
1935년(15세) - 건강회복
- 선린상업학교 전수부(야간)에 들어감
1938년(18세) - 선린상업학교 전수부를 졸업하고 본과(주간) 2학년으로 진학
1940년(20세) - 용두동의 집을 줄여 다시 현저동(峴底洞)으로 이사
1942년(22세) - 선린상업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감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해 조후쿠 고등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그만두고 쓰키지 소극장의 창립 멤버 미즈시나 하루키
연극연구소에 들어가 연출 수업에 관심
1943년(23세) - 만주 길림성(지린성)으로 이주
- 조선학병 징집 피해 귀국
- 당시의 서울 연극계 주도 세력 안영일 밑에서 조연출을 맡음
1944년(24세) - 봄, 가족들이 있는 만주 길림성(지린성)으로 떠남
1945년(25세) - 시 ‘묘정의 노래’를 <예술부락>에 발표하며 등단
=> ‘묘정의 노래’의 발표를 계기로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
1946~1948년(26~28세) - 문인들과의 만남 및 외국 잡지 번역
- <신시론 동인> 결성
1950년(30세) - 김현경(金顯敬)과 결혼, 돈암동에 신혼 살림을 차림.
- 서울대 의대 부속 간호학교에 영어 강사로 출강
-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후 문학가동맹에 나감
- 의용군에 강제 동원됨
1951~1952년(31~32세) - 거제 수용소로 이동
# <타임>, <라이프>지를 보게 되는 계기
1953년(33세) - 석방 후 부산으로 감
#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 포로동지들에게’를 썼으나 발표하지 않음
1954년(34세) - 서울로 돌아와 주간 <태평양>에 근무
1955~56년(35~36세) -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으로 6개월가량 근무
# ‘여름뜰’, ‘여름아침’, ‘눈’ 등의 작품을 씀
1957년(37세) - ’폭포’ 발표
1958년(38세) - 11월,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39세) -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 출간
- 참고문헌
-
강웅식, 『시, 위대한 거절』, 청동거울, 1998
이숭원, 『시, 비평을 만나다』, 태학사, 2012
이숭원, 『20세기 한국시인론』, 국학자료원, 1997
이숭원, 『초록의 시학을 위하여』, 청동거울, 2000
이숭원, 『교과서 시 정본해설』, 휴먼앤북스, 2008
자료평가
-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