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의 이해] 조선시대의 술 문화 - 금주령(금주령의 전개와 영조의 금주령으로 벌어진 문제점, 금주령의 쇠퇴), 술집과 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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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금주령
1) 금주령의 전개
2) 영조의 금주령으로 벌어진 문제점
3) 금주령의 쇠퇴

2. 술집과 술문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금주령

1) 금주령의 전개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수시로 금주령을 발동하여 개인의 음주를 금지했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고도 건전한 것이었다. 알코올은 주로 곡물과 과일에서 얻는다. 벌꿀이나 용설란 같은 것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종을 이루는 것은 역시 곡물과 과일이다. 감자나 고구마 같은 작물은 18세기 이후에 들어왔고 원래 구황식물이라 알코올의 재료로 널리 쓰이지 않았다. 고구마가 주정이 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당연히 조선시대 술의 주재료는 쌀과 보리 등 곡물이었다. 곧 술은 귀중한 식량인 곡물을 축내는 주범이었던 것이다.
술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밥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사회 전체가 농업생산에 목을 매고 있던 조선시대에 곡물의 안정적 확보는 체제안정과 통하는 문제였다. 흉년이 들었을 경우. 곡물의 낭비는 곧 죽음을 불러왔다. 그러니 곡물이 술로 낭비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멀리 올라갈 것 없이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쌀로 막걸리를 담을 수 없지 않았는가. 물론 곡식 낭비라는 측면 외에도 드물게 천재지변이나 화재와 같은 재난이나 국상 등의 거창한 상사가 있을 때 근신하는 의미에서 금주령이 발동되기도 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조선은 5백 년 동안 금주령을 기본정책으로 유지했다.
<태조실록> 7년 5월 28일 조에는 각 도에 술을 금하는 영을 거듭 엄하게 내렸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것이 조선시대 최초의 금주령이었다.
참고문헌
정대성 저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혜, 이회문화사 2006
정동효 저, 우리나라 술의 발달사, 신광출판사 2004
조정형 저, 다시 찾아야할 우리의 술, 서해문집 2010
이종기 저, 술 이야기, 다할미디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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