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말여초 혼란기. 후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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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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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라하대사회의 동요
- 진골귀족의 분열
- 귀족사회의 분열과 왕위쟁탈전
- 골품제도의 퇴화
(2)신라하대의 사회면
- 수취체제의 모순과 농민층의 피폐
- 농민반란
- 호족의 대두
- 호족
- 풍수지리·도참사상
(3) 후삼국
- 본문내용
-
(1)신라하대사회의 동요
진골귀족의 분열
역대군주들은 권력집중을 목표로 한다. 물론 중대에는 집사부를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시키는 등 전제적 왕권체제였다. 이 권력구조가 骨品制度(골품제도)에 토대를 두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경덕왕을 국왕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관료제도를 양성시키기 위해 국학(國學)의 진흥에 주력하였다. 진덕여왕5년(551)에 설치된 국학은 진골귀족보다는 하급귀족, 즉 6두품이 가장 흥미를 보였기에 그간 큰 발전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경덕왕`혜공왕은 국왕에 대한 큰 관심을 보였다. 어쩌면 국학의 辛學때에는 문묘에서 釋奠祭(석전제)를 거행했을 개연성이 크다. 여러 가지의 경덕왕의 개혁정책은 진골귀족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진골귀족과의 권력투쟁에 지칠대로 지친 경덕왕은 만년에 의욕을 잃고 宴樂(연악)에 탐닉했다. 그 결과 왕의 정치개혁을 지지하던 측근의 충신들까지도 하나씩 둘씩 그의 곁을 떠나갔다. 심한 고독 속에서 경덕왕은 재위 24년 6월 세상을 떠났다. 경덕왕의 뒤를 이어 8살난 태자가 등극하였데, 바로 혜공왕이다. 이에 모후가 섭정했지만 선왕 때부터 노출되기 시작한 진골귀족들의 불만을 억제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했다. 왕이 즉위한 이듬해 정월 두 해가 출현하여 불길한 장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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