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탐방]덕수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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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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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덕수궁의 건립
2, 구한말의 덕수궁
3. 일제시대의 덕수궁
4. 해방 후의 덕수궁
덕수궁 답사
결론
참고자료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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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제시대의 덕수궁
일제 시대에 덕수궁 대부분이 철거되고 권역도 축소되어 지금 현재 덕수궁의 면적은 18,635평이며 궐내에는 정문인 대한문과 외전건물인 중화문, 중화전, 덕홍전, 내전건물인 함녕전, 즉조당, 준명당, 석어당 그리고 광명문 그 외에 정관헌, 석조전 등 다수의 양식 건물들이 산만하게 남아 있다. 1922년에 일제는 본격적으로 궁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서쪽 선원전 터를 통과하는 도로를 뚫어 덕수궁을 동서로 두 동강 내었는데, 그 길이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덕수궁 돌담길’이 되었다. 일제는 새 길로 잘려 나간 덕수궁터를 미국대사관을 비롯한 외국 공사관이나 학교터 등으로 마구 불하하여 덕수궁은 만신창이가 돼버렸고, 그 결과 덕수궁은 지금의 모습처럼 규모가 엄청나게 줄어 들고 말았다. 현재 법원에서 고려병원으로 통하는 도로 북쪽 넓은 지역에 듬성듬성 보이는 큰 고목들만이 과거 덕수궁의 범위가 어디까지 였다는가를 말해 주고 있을 뿐이다. 1933년 경에는 궁내에 있던 대부분의 건물들이 훼철되었는데, 그 때 다행히 화를 면해 현존하고 있는 전각은 중화문, 중화전, 덕홍전, 함녕전, 즉조당, 준명당, 석어당, 광명문 등이다.
4. 해방 후의 덕수궁
1960년 대 들어서 덕수궁은 또다시 수난을 당한다. 태평로 일대의 개발로 인해 담장이 허물어져 나갔고 대한문으로부터 태평로 파출소까지 6m 안쪽으로 도로를 넓히면서 담장을 허물고 돌담 대신 철책으로 다시 담장을 친 것이다. 이 철책은 당시 관리들의 과오를 바로 잡는데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야 됬다. 당시 서울시는 덕수궁을 도시민의 공원, 놀이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 아래 궁내에 스케이트 장을 만들고, 벤치를 놓는가 하면은 상점과 음식점을 지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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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궁건축, 편집부 편, 1996년, 열화당,
덕수궁, 김순일, 1997년, 대원사
서울문화재 (http://sca.visitseoul.net/intro/intro.htm)
궁궐지킴이 (http://www.palac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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