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조선왕조 법][조선왕조 묘호][조선왕조 왕복][조선왕조와 조선왕조실록][조선왕조와 경국대전]조선왕조의 법, 조선왕조의 묘호, 조선왕조의 왕복, 조선왕조와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와 경국대전 분석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3.07.31 / 2019.12.24
  • 13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5,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Ⅰ. 서론

Ⅱ. 조선왕조의 법

Ⅲ. 조선왕조의 묘호

Ⅳ. 조선왕조의 왕복
1. 면복(冕服)
1) 면류관(冕旒冠)
2) 곤복(袞服)
2. 조복(朝服)
3. 상복(常服)
4. 편복(便服)

Ⅴ. 조선왕조와 조선왕조실록

Ⅵ. 조선왕조와 경국대전
1. 대명률의 의용과 형전
2. 토지제도의 호전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유교에서는 천자가 천명을 받아 백성을 통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하늘(천)에 대한 제사는 오직 천자만이 지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주례 월령에 “천자는 천지와 명산대천에 제사하고, 제후는 경내의 명산대천에 제사하며, 대부는 오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이에 의하면 조선의 국왕은 하늘에 제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도 하늘에 제사하는 원(환)구단이 있었고, 원구제를 행하여 호천상제와 오제를 제사지낸 바 있었다. 이러한 조선의 제천행사에 대하여 명나라에서는 홍무예제의 번국예에 따라 제천행사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명나라는 일찍이 고려와 안남에 제관을 직접 파견하여 산천에 제사한 바 있었다. 이는 고려나 안남의 산천이 명나라 천자의 천하임을 표방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명나라 초기에 있었던 일이었고, 뒤에는 크게 완화되었다.
관료들 중에서도 존명사대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이상 원구제 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예조전서 조박 과 같은 사람이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이 건국된 1392년(태조 1)에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원구제를 폐하고, 불교 · 도교식 제사와 음사를 일체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산천 · 성황신은 주현명 만 붙이고, 덕호나 훈호는 모두 없애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해인 1393년(태조 2)에는 여전히 송악성황은 호국백, 화령 · 안변 · 완산성황은 계국백, 지리 · 무등 · 금성 · 감악 · 삼각 · 백악 · 진주성황은 호국백, 기타는 호국지신으로 삼았다.
천지 · 산천 · 일월성신에 대한 제천행사는 일찍이 자연숭배나 귀신신앙으로 널리 유행하여 왔으며,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는 불교 · 도교 · 음사가 습합되어 왕실에서는 물론, 민간에 제천행사가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명산대천에 “숭위” · “인성”과 같은 덕호를 붙인다던지, 악 · 진 · 해 · 독에 미호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명나라는 1370년(공민왕 19)에 조서를 보내어 악 · 진 · 해 · 독에 미호를 붙이지 말 것과, 산수명에 신자 만 붙일 것, 음사에는 관리가 제사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하였다. 이 문제는 복잡한 내외 정세로 더 이상 거론되지는 않았다. 유교가 국가의 지도 이념이 되었지만 건국 초기에 별안간 오랫동안 시행해 오던 불교 · 도교 · 음사 등의 호국적인 기능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국왕은 국무당을 내시별감과 함께 파견하여 산천제사를 지내기까지 하였다.
참고문헌
김기태 - 조선왕조실록 의 편찬 과 보존과정 에 대한 연구, 국회도서관, 1982
김형남 - 조선왕조 경국대전의 헌법적 의미, 단국대학교부설법학연구소, 2007
박인순 - 조선왕조의 건국이념과 초기 구휼정책의 전개, 제주한라대학, 2011
이재룡 - 조선 왕조 법 제도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의미, 동양사회사상학회, 2003
이병탁 - 조선왕조의 국장제도, 구리문화원, 2005
엄정옥 - 조선왕조 친잠의례 복식 연구, 성균관대학교, 2011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한국사/국사/역사] 조선왕조실록 요약(정리)_1
  • 조선왕조실록 요약조선왕조실록이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 2,077책으로 이루어진 기록물 한 책의 두께가 1.7cm인데 아파트 12층 높이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생존했을 때 만들어지지 않고, 승하(세상을 떠남)하고 난 뒤에 편찬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담당하던 춘추관에서 실록 편찬을 위한 임시 관청인 ‘실록청’을 만들어 여러 자료를 모아 매일 취급한 문서와 왕명의 전달 등을 정리해서 기록▣ 조선왕조실록의 중립성- 조선왕조

  • [한국사/국사/역사] 조선왕조실록 요약(정리)
  • 조선왕조실록 요약조선왕조실록이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 2,077책으로 이루어진 기록물 한 책의 두께가 1.7cm인데 아파트 12층 높이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생존했을 때 만들어지지 않고, 승하(세상을 떠남)하고 난 뒤에 편찬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담당하던 춘추관에서 실록 편찬을 위한 임시 관청인 ‘실록청’을 만들어 여러 자료를 모아 매일 취급한 문서와 왕명의 전달 등을 정리해서 기록▣ 조선왕조실록의 중립성- 조선왕조

  • 조선 기록문화의 의궤
  • 법왕실 혼인은 육례(六禮)를 기본으로 하였다. 납채, 납징, 고기, 책비, 친영, 동뢰가 그것이다. 그런데 육례는 왕실과 민간, 그리고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유교 경전의 고전에 해당하는 『예기』의 「혼의」편에는 육례를 규정했지만, 조선중기 이후 널리 채택된 『주자가례』에는 의혼, 납채, 납폐, 친영의 4례를 혼인의 예법으로 규정했고, 조선후기의 학자 이재(李縡)가 정리한 『사례편람』에도 4례만이 언급되어 있다.육례가 준수된

  • [경찰학] 조선시대 경찰에 관한 연구
  • 조선시대의 행정조직과 군사조직을 살펴보고, 경찰조직를 살펴보기로 한다.Ⅱ. 조선의 조직 조선시대의 정치조직이 제도적으로 완성된 것은 세조, 성종 때에 경국대전의 편찬과 시기를 같이 한다. 경국대전은 대체로 변경됨 없이 속대전, 대전통편을 거쳐 갑오개혁 때까지 기본법전으로서 시행되었다.) 태조는 즉위 후에 관제를 발포하고 문무백관을 임명하였으나, 그 제도는 고려의 것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그 후에 문하부의 권력집중 및

  • [역사와 문화] 연산군 vs 광해군
  • 법 이외에 정신 수양과 섭생까지 기록하여 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동의보감은 이후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전파되어 조선의 의학 기술을 세계에 알렸다. 또 1614년 이수광이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지붕유설을 탈고하였다. 지붕유설은 천문, 지리, 역사, 정치, 경제 등 인문적인 교양과 생활사와 자연에 관한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는 책이다. 특히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고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