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 박정희에 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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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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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 본문
< 박정희의 친일 행각>
(1) “사쿠라와 같이” - 일제에 대한 무한한 충성
(2) 그는 왜 만주로 갔는가
(3) 변신의 달인 다카기 마사오
(4) 일본군인에 대한 박정희의 향수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5) 박정희는 독립 운동가였을까?
(6) 황군 장교에서 광복군 장교로
3. 결 론 : 과연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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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
요즘 사회 일각에서 친일파 척결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우리가 어릴때부터 위인들이라고 익히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친일 행위에 대해서 본격적인 조사를 하고 있다. 그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반공주의자로 알려진 것 외에 광복 이전 친일 문제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이키고 있다. 미국의 케네디와 비교되는 한국의 젊은 지도자, 경제개혁 5개년으로 오늘날의 국가의 저변을 튼튼히 하고 우리 국민의 보릿고개를 기억의 저편으로 날려버린 경제 대통령등 이런 수식어들은 우리가 어렸을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온 얘기들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말들은 이제 진실이 아닐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에 충성을 다 바치는 친일 행적이 새로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본론에서 그가 어떤 친일 행적을 했으며 과연 그를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정을 해야 할지 아니면 매국노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본 론 - 박정희의 친일 행각
(1) “사쿠라와 같이” - 일제에 대한 무한한 충성
1942년 3월 만주의 신경군관학교 졸업식장에서 오카모토 미노루(關本實)라는 한 졸업생이 '어전강연'이란 답사를 했다. 답사 내용은 일본 천황과 일제의 만주 괴뢰국 황제 부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것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라는 선 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카모토 미노루, 그는 그 후 20여 년 뒤 5․16 군부 쿠데타를 통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박정희 바로 그였다. 중국인과 조선인 생도 240명 가운데 수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그 대표로서 답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졸업식장에서 그는 우등상으 로 만주 괴뢰국 부의 황제로부터 금시계도 받았다. 만주에서 박정희가 군관학교 생활을 시작한 것은 1940년 봄부터였다. 그 전 해 만주로 왔던 그가 그 해 봄에 신경군관학교 제2 기로 입학했던 것이다. 신경군관학교로 말하면, 그 정식 명칭이 '만주제국육군군관학교'로서 일제의 만주 괴뢰국인 만주 제국의 육군사관학교였다. 당시 그와 함께 입학한 신입생들은 일본인 240명, 만주인 228명, 조선인 12명이었다. 그의 입학 성적은 만주인과 조선인 240명 중 15 등이었다. 당시 같이 입학한 조선인 중에는 나중에 5․16 군부 쿠데타 당시 이에 반대한 제1군 사령관 이한림(李輪林)도 끼여 있었다. 입학 당시 23세였던 박정희는 5년제 사범학교를 마친 후 3년간 교사 생활을 한 후에 군관학교에 들어왔기 때문에 3~4년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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