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문화-조선시대의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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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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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한복소개
한복의 역사, 변천사

본론
- 궁중의 의복
왕의 의복
여성들의 궁중의복
- 남성의 의복
사(백관의 의복)
일반백성의 의복
- 여성의 의복
궁녀
의녀
다모
기녀
- 관혼상제
관례
혼례
상례
제례
- 유아복의 풍속
평상복
명절복
- 그 외
장신구
신발

결론

본문내용
사-백관의 의복

1.제복
왕이 면복을 입고 종묘 사직에 제사 지낼 때 신하들 중 제관과 향관만 입었던 옷이다.
2.조복
왕이 면복을 입고 종묘 사직에 제사 지낼 때 백관이 입었던 옷이다.
3.공복
공사로 임금께 알현하거나 사은할 때 또는 초하루, 보름, 조회, 동지에 백관이 왕세자에게 하례할 때 입었던 옷이다.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포, 대, 홀, 화로 이루어진다.
4.상복
관리들의 사무복으로 국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착용하였으며 색은 정하지 않아 왕조마다 유행색이 있었다.
5.시복
관리들의 사무복으로 흉배가 없는 단령이다. 형태, 구성, 재료가 상복과 같았고 색으로 구별하였다. 상복 색은 정하지 않았으므로 상복으로 홍색 계통을 많이 입었을 경우 시복 색은 흑색이나 청색으로 정했으며, 상복 색으로 청색 계통이 유행일 경우 시복은 홍색 계통으로 정했다.
6.융복
융복은 문관이나 무관이나 모두 몸을 경첩하게 하여야 할 경우의 복장으로 왕이 교외로 행차할 때 문무백관이 수행하며 입었던 옷이다. 또 사신으로 갈 때, 국란을 당했을 때 입었다.
7.군복
구군복은 문무관이 입었던 군복이고, 갑주는 싸움터에서 적의 화살이나 창검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던 호신구이다.효종조에 금위장사들에게 협수단의를 입게 하였는데 위졸들의 의복을 선명하고 화려하게 하기 위하여 비단으로 만들어 입는 것을 허락하였다.
8.앵삼
과거 급제한 사람이 임금이 내린 어사화(종이꽃)를 복두에 꽂고 삼일유가(사흘 동안 시가 행진)할 때 입던 옷이다. 앵무새색 단령에 검은 선을 둘렀다.
9.녹사복
중인 계급에 속하는 말단 관리로 중앙 관서에 근무하는 아전이 입었던 옷이다. 비록 직급은 낮으나, 어가를 시위하고 궁중의 대소의식에 참여하는 직분이었던 만큼 그 차림이 화려하였으며 위의가 당당했다.
10.나장복
죄인을 문초할 때 매를 때리거나, 귀양가는 죄인을 압송하는 일을 맡았던 하급 관리인 나장의 옷이다.

일반 백성의 의복

조선시대 4가지의 직업군 사,농,공.상중에 사를 제외한 나머지 3가지 직업군의 의상은 다름이 없다. 서민 남자가 아동기를 지나 청년기에 이르면 평상복으로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다. 이러한 평상복 형태는 성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를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외출을 하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떄는 서민들도 소창의나 두루마기를 바지, 저고리 위에 겉옷으로 입었다. 이떄 서민들이 겉옷으로 입었던 소창의와 두루마기는 당시 양반층에서는 중치막이나 도포 밑에 입었던 속옷인 동시에 평상복이었다. 따라서 양반의 평상복이 서민들의 외출복 내지 예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조선조 말엽에 가서는 서민들이 도포를 겉옷으로 입는 풍속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다 도포가 활동하기에 불편하다는 이유 등으로해서 고종대에 이르러 두루마기가 다시 평상시의 외출복으로 되었다. 외출 또는 의례를 목적으로 포를 입은 뒤에는 머리에 갓을 쓰고 발에는 버선과 짚신을 신었다.
이상과 같이 복식의 흐름이 평등화되고 단순화되는 현상은, 조선중기 영조, 정조대부터 일어난 실학사상이 복식문화에 영향을 줌으로써 실용성 위주로 변천되었던 것으로, 특기할 만한 복식문화의 흐름인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에 서민들이 평상시에 입던 바지는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통이 넓은 바지와 통이 좁은 바지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중 넓은 바지가 이어진 예는 조선조 말의 외국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쓴 ‘코리언 스케치’의 한 기록이 잘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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