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묘청과 김부식(자주와 사대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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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 차 >

1. 머릿말


2. 시대적 배경


1) 윤관의 동북 9성과 여진의 성장


2) 이자겸의 난


3) 금의 팽창과 송의 퇴진


3. 서경파의 등장과 갈등


1) 서경파의 등장


2) 서경의 위상


3) 인종의 서경 행차


4) 개경파와 서경파의 갈등


5) 인종의 시각 변화, 그리고 개경파의 득세와 서경파의 몰락


4. 서경천도운동과 이후


1)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대위국


2) 묘청의 난에 대한 대응


3) 정지상과 묘청의 죽음


4) 서경의 재봉기와 불타는 서경성


5) 김부식의 정권 장악과 실각


5. 맺음말



본문내용

2) 서경의 위상

서경은 늘 개경 다음 가는 위상을 지닌 도시였다. 남경이 건설되면서 상대적으로 위축되기는 했지만 태조 이래로 서경은 늘 개경을 대체하는 천도의 후보지로 각광받았다. 태조가 훈요십조에서 ‘서경은 수덕(물의 덕)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으로 만대에 이루도록 대업을 누릴 땅이니, 사계절의 중간달마다 순행해 머물기를 1년에 100일이 넘도록 하라’고 당부한 바도 있었다. 후대에는 보통 가을에 국왕이 행차해 팔관회를 열고 신령(新令)을 반포하며 대규모 사면령을 내려 민심을 돌보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선대왕들이 재위 기간 동안 서경에 약 2∼3회 행차한 반면 인종은 서경세력과 함께 7번이나 행차했다.

그러나 고려가 서경을 중시했던 데에는 풍수 지리적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경은 북방의 군사 요지였기 때문에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으니 이것이 서경 힘의 원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경에는 고구려의 후예들, 여진족, 신라 사람들 등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사민정책(다른 지역 사람들을 평양으로 이주시켰던 정책)에 의해 섞여 살아가고 있었다. 개경은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았으나 서경과 동경과 남경은 각 지역에 설치된 유수관(留守官)의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서경에는 동경, 남경과 달리 유수관 외에 독자적인 관부가 존재했다. 서경 정부는 일종의 총독부인 서경유수관과 일종의 자치정부인 서경관의 이중구조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 이원적 구조는 서경을 우대하면서 견제하기 위해 탄생했는데 두 부류의 기반이 달라 종종 서로 갈등이 빚어졌다. 서경인들은 서경관의 문무양반으로 일할 수 있었으나 이는 특혜만은 아니었다. 중앙정부로 진출하는 데에는 오히려 제약이 따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서경인들은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는 데 적극적이었다.

3) 인종의 서경 행차

서경에 머물던 인종은 척준경을 축출한 직후인 3월에 국정쇄신(國政刷新)의 지침을 담은 칙령을 반포했다. 자신이 즉위한 이래 재변(災變)이 이어져 안녕(安寧)한 해가 없었는데 작년 2월에 역적이 난을 일으켜 부득이 처벌했다고 했다. 이로부터 자신을 책망하며 부끄러워해 오다가 일관(천문관)의 건의를 수용해 서도(서경)에 행차해 기왕의 허물을 심히 반성하여 ‘유신(惟新)’의 가르침이 있기를 바라 전국에 포고한다고 했으니, 그 칙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땅의 신령에게 제사하여 좋은 기운을 맞이하려 한다
둘째. 지방에 왕의 사신을 파견해 지방관들을 감찰하여 고과를 매기려 한다.
참고문헌
< 참 고 문 헌 >

1. 논문

이강래,“‘삼국사기’의 성격”,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1


김정권,“묘청란의 새로운 이해”, 국제비교한국학회, 2008


민현구,“사실 이렇게 본다 2, 묘청란은 왜 일어났나”, 내일을 여는 역사, 2001


이정신,“서경천도운동은 왜 일어나게 되었나”, 내일을 여는 역사, 2002


2. 서적

김상웅,『묘청과 김부식, 진보와 보수 문사의 대결』, 인물과 사상사, 2006

김창현,『윤관과 묘청 천하를 꿈꾸다』, 경인문화사, 2008

신채호,『조선상고문화사』, 비봉출판사, 2007

이정신,『고려시대의 정치변동과 대외정책』, 경인문화사, 2004년

정구복,『김부식의 생애와 업적 』(정신문화연구 82(2001.3) pp.3-24 1225-4576 KCI 등재), 2001

김윤곤,『한국 중세의 역사상 : 제 2 편 고려시대의 사회변동 ; 제 3 장 묘청 (妙淸) 등 서경천도파와 당시 국제정세』 (정신문화연구 82(2001.3) pp.3-24 1225-4576 KCI 등재 ),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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