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성리학]주자학(성리학) 전파, 기본이념, 학파분화, 주자학(성리학) 퇴계학파, 율곡학파, 퇴계율곡절충파, 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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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주자학(성리학)의 전파

Ⅱ. 주자학(성리학)의 기본이념

Ⅲ. 주자학(성리학)의 학파분화

Ⅳ. 주자학(성리학)의 퇴계학파

Ⅴ. 주자학(성리학)의 율곡학파

Ⅵ. 주자학(성리학)의 퇴계율곡절충파

Ⅶ. 주자학(성리학)과 예학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주자학(성리학)의 전파
한국에 성리학이 들어온 것은 고려 말기,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元)나라에 갔던 안향(安珦)이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가져와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성균관의 유학자들에게 수용되어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으로서 새로운 학풍을 이루게 되었으며, 그 대표적 인물로서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정도전(鄭道傳) 등을 들 수 있다. 이색정몽주길재 등은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유교를 숭상할 것을 주장하는 데 그쳤고, 또 신왕조에 협력하지도 않았으나 정도전하륜(河崙)권근(權近) 등의 성리학자는 불교의 폐단뿐만 아니라 교리(敎理) 자체를 논리적으로 변척(辨斥)하는 동시에 이태조를 도와 법전(法典)의 제정과 기본정책의 결정을 통하여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는 조선조가 성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정몽주의 학풍을 이은 길재는 의리학(義理學)의 학통을 세웠고, 그 학통은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 그리고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지면서 기묘사화을사사화 등의 희생을 겪었으나 도학의 의리정신은 면면히 계승되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였으며, 송대의 성리학이 이 땅에 전래된 지 300년 가까이 되어서였다. 즉, 이때 한국 유학의 쌍벽인 이퇴계(李退溪)와 이율곡(李栗谷)이 태어났으며, 서화담(徐花潭)이항(李恒)김인후(金麟厚)기대승(奇大升), 그리고 성혼(成渾) 등도 모두 같은 시대의 성리학자들이다. 그들은 성리학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함에 있어 자연이나 우주의 문제보다 인간 내면의 성정(性情)과 도덕적 가치의 문제를 더 추구하였으니, 이퇴계와 기대승 및 이율곡과 성혼의 사단 칠정(四端七情)에 관한 논변(論辨)이 바로 그것이며, 그들은 이 논변을 통하여 이기성정론(理氣性情論)을 활발히 전개시켰다. 한편, 내면적 도덕원리인 인성론(人性論)은 송익필(宋翼弼)김장생(金長生) 등에
참고문헌
○ 김호태,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보다
○ 김풍기(1998), 율곡 이이의 문학론 연구, 고려대 석사
○ 예문동양사상 연구원·윤사순 공저(2002), 퇴계 이황, 예문서원
○ 장숙필(1992), 율곡 이이의 성학연구, 고대민족문화연구소
○ 정대환(1992), 조선조 성리학 연구, 강원대학교 출판부
○ 황의동(2001), 송준길의 성리학 연구, 새한철학회 23, 새한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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