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이해] Ludwig van Beethoven(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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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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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베토벤의 생애
2.베토벤의 주변인물
3.베토벤의 작품
4.베토벤의 영향
- 본문내용
-
하이든 ·모차르트와 함께
빈고전파를 대표하는 독일의 작곡가이다.
고전파의 형식이나 양식을 개성적으로
다듬었고 낭만파로의 이행단계에 있는
작곡가이다. 작풍은 동적인 힘이 특징이고
강고한 형식감으로 일관되어 곡마다
독자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후기에는 다이내믹한 힘은 부족하지만,
보다 깊은 마음의 세계가 표현되어 있다.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1795년 - 작품번호가 있는 첫 작품인 <피아노 3중주곡 제1번 내림마장조>를 출판했고, 첫 공개 연주회를 가짐
1796년 - 프라하 , 드레스덴 , 라이프치히 , 베를린 등으로 연주 여행을 떠남
1800년 - 빈 고전주의 양식의 전형을 보여 주는 <교향곡 제 1번 다장조>를 발표
1801년 - 피아노 소나타 '월광' 작곡
1802년 - 귓병 치료를 위해 하일리겐슈타트로 요양. 유서를 쓰고 자살하려고 결심
어릴때 : 천연두
1797 : '심한 설사병'(아마도 장티푸스인듯). 이후에도 위장장애(설사, 복통) 계속됨
1801 : 최초로 난청 고백. 친구 아멘다, 베겔러.
1802 :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1809 : 심한 열병. "나의 약한 청력"
1810 :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가 어렵다."
1814 :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서 피아노 연주. "아마도 자신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듯하였다. 포르테 부분에서는 귀에 거슬릴 정도로 피아노를 세게 두들겨 대었으며, 피아노 부분에서는 너무 부드럽게 쳤기 때문에 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슈포어의 진술)
1818 : 보청기를 사용하고도 대화가 거의 불능(신들러)
1820 : 조카 카를의 양육권 재판에서 "나는 청력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대화에 어려움이 있다."
1821 : 7월 "황달이 아주 심해졌다."
1822: 오페라 피델리오 연습지휘중 청력장애로 중단, 거의 청력소실
1823 : "내 위장은 항상 위험한 상태다.“, 심한 눈병
1824 : 9번 교향곡 초연시 청중의 박수소리도 잘 듣지 못함.
1825 : "침에서 피가 섞여 나오나 코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증상은 작년 겨울에도 있었다. 위장은 점점 약해지는 듯하고 심한 설사가 있다. 장의 염증. 갈수록 몸이 쇠약해지는 듯하다."
1826 : "나는 류머티즘과 통풍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 왔다."
"형 베토벤은 식욕이 떨어져 삶은 달걀 외에는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주는 계속 마셨고 설사도 자주 하였다. 배꼽은 점점 더 커져서 오랫동안 붕대를 감고 있었다. 12월이 되면서 그는 더욱더 식욕을 잃고 갈증과 복부 불쾌감을 호소하였다. 발도 부은 상태였다."
"심한 황달이 있었고 간은 딱딱해져 있었으며 결절이 만져졌다. 복수가 차서 배가 탱탱한 상태였다."
1827 : 황달 심해지고, 25일부터 의식저하. 간기능부전으로 3월 26일 오후 5시경 사망.
Beethoven symphony no.9 <합창>
*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노래>에 음악을 붙임
* 이때의 베토벤은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음향의 세계와 단절됨
* 육체적인 건강과 가난
* 그는 고뇌를 맛본 환희를 영원히 노래 부르고 음으로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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