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학] 문화일보 신문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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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문화일보 연혁

Ⅱ. 문화일보의 소유구조 및 재정상황

1. 소유구조
2. 재정 상황

Ⅲ. 문화일보 조직

1. 문화일보 부서(국)별 종사자
2. 부서별 세부사항

Ⅳ. 문화일보 수익 사업

1. 문화일보 광고
2. 문화일보홀
3. 문화일보 파주 통일 마라톤 대회

Ⅴ. 문화일보의 현대그룹 관련 기사 분석

1. 정주영 회장 별세 관련 기사 분석
2. 정몽구 회장 비자금 관련 기사 분석

Ⅵ. 문화일보의 논조

1. 교육 관련 사설
2. 복지 관련 사설
3. 북한 관련 사설

Ⅶ. 문화일보 섹션의 특징

1. 樂카페
2. 인물면
3. People & Life 섹션
본문내용

해당 기간의 기사 개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 <조선일보가> 1개의 기사를 더 실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24일 토요일 신문(43면)을 제외한 나머지 날짜의 신문을 54, 55면으로 발행했다. 반면 <문화일보>는 토요일 신문(24면)을 제외한 나머지 날짜의 신문을 총 32면으로 발행했다. 하루에 대략 22면의 지면 수 차이가 나지만 기사 개수에서 차이가 없었다. 이는 <문화일보>가 정주영 회장 별세 관련 기사를 많이 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기사의 내용
우선 <문화일보>와 <조선일보>에서 다룬 기사 아이템에는 차이가 없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일화 및 일대기, 각 계의 조문 상황, 현대그룹의 반응, 북한 조문단에 관한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기사 내용과 구성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1)사설에서 평가하는 정주영
<문화일보> 3월 22일자 사설 ‘정주영 정신이 남긴 것’에서 정주영은 ‘불굴의 개척 정신으로 한국의 경제 기적을 일궈낸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자 큰 별’로 묘사되었다. 현대건설 설립, 경부고속도로 건설, 소양감 댐을 건설한 토목기술, 세계 최대의 조선소로 커진 현대 중공업, 앞장서서 유치한 88올림픽, 한국의 지도를 바꾼 서산만 개척,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튼 북한 방문, 의료 교육 자선사업에 약 10억달러 기부 등 그의 업적을 소개한다. 그리고 1992년도 대선 출마 후 실패에 대해선 “그는 ‘나라를 구하고 싶어’ 1992년 대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라고 만 언급한다. 또한 ‘현대’는 그의 정신을 이어 받아 ‘견인차 역할을 이어가야 하고, 금강산 관광을 계속시켜야 하고, 대북 사업을 진전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3월 24일자 사설 “북한의 정주영회장 조문 의미”에서 ‘우리의 미풍양속 중의 하나가 길흉사를 계기로 하여 사이가 나빴던 이웃간에 화해하는 풍습이다. 조문단 파견을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만든다면 이는 남북화해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유지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3월 23일자 사설의 제목은 “정주영 신화, 그 빛과 그림자”이다. 정주영 신화의 빛은 <문화일보>에서 소개한 그의 업적과 같은 맥락이다. 정주영은 태국 등의 해외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며 국내 시장에만 머물던 한국기업의 지평을 넓혔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여 한국을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늘’과 과오도 있는데 “실패로 끝난 대통령 선거 출마, 본의든 아니든 비판의 대상이 된 정경유착, 애국적 분단극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 유동성 위기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문화일보>가 정주영 명예회장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반면 <조선일보>는 그의 기업인으로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함과 동시에 대선 실패와 남북사업으로 인한 현대그룹의 손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2)특집 구성
<문화일보>는 3월 22일부터 27일(일요일 제외)까지 5일에 걸쳐 “정주영회장 별세” ①신화적 생애 ②남달랐던 기업관 ③도전과 응전 ④신용을 지켜라 ⑤돈에 대한 철학 특집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3월 24일에 “지인들이 겪은 고 정주영 전회장 강풍에도 헬기서 느긋하게 낮잠 수줍음 잘타 조회 때 박수 금지”라는 헤드라인의 특집기사를 1회 싣는데 그쳤다. 내용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3) 2001.3.22~2001.3.26 이후의 정주영 명예회장 관련 기사
2001년도 12월까지 <문화일보>와 <조선일보> 두 신문사 모두 정주영 명예회장과 관련된 기사를 꾸준히 실었다. <문화일보>는 2001년 3월 27일부터 2001년 12월 31일까지 총 13개의 기사를 <조선일보>는 같은 기간 동안 총 10개의 기사를 실었다. <문화일보>에는 그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는 내용의 기사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문화일보>는 2002년 3월 21일 정주영 명예회장의 1주기에 맞추어 ∙사설 “정주영 정신 살아있다” •<정주영은 살아있다>대학가 정주영학 꾸준한 인기 •<정주영은 살아있다> 정주영회장 1주기 추념 세미나 등의 기사에서 그의 업적을 기렸다. <조선일보>는 2002년 3월 21일자 인물면에서 “고 정주영 현대명예회장 1주기… 추모행사 잇달아” 를 통해 1주기를 알렸다.

2. 정몽구 회장 비자금 관련 기사 분석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사건에 대한 <문화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사를 분석했다.

가. 기사의 내용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 조성 관련 의혹이 터진 이후 <문화일보>와 <조선일보> 모두 그와 관련된 기사들을 썼다. 하지만 기사들의 내용과 구성에서 두 신문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1)2006년 4월
2006년 4월 3일 <문화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문화일보>에서는 정몽구 회장의 출국과 관련해 “정 회장, 도피성 출국으로 안봐”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같은 날 <조선일보>에서는 ‘회장 돌연 출국 현대車 비자금 수사 중……檢 사전 협의 안 해’, ‘회장 출국 “도피성 아니냐” 수사 맥 빠질 수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정몽구 회장의 출국과 관련해 두 신문의 제목에서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다.
4월 24일 정몽구 회장의 검찰 소환과 관련해서도 <문화일보>에서는 ‘한국 車 산업 사면초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는 “자동차 산업을 제외하고는 한국 경제가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하며 자동차 산업이 한국경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또 자동차 산업에서 핵심적인 부분인 현대차가 환율, 유가, 수사, 노조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기사를 비롯해 ‘글로벌 경영 흔들리나 술렁’라는 제목의 기사나 ‘대기업 비리사법처리 ‘사안에 따라 각양각색’’등의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날 <조선일보>에서는 ‘현대차 수사 고민하는 검찰 “대기업은 1人 기업이 아니다” 채동욱 기획관, 정몽구 회장 관련 원칙론 강조’, ‘현대車 수사 이번 주 매듭’, ‘현대차, 기업설명회도 전면 중단’ 등의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외에도 <문화일보>에서는 4월26일자 ‘현대車 국가 기여도 감안해야’, ‘지자체장들 지역 경제 타격 우려’등 친 현대기업적 기사를 상당수 내보냈다.

2)2006년 4월 이후
2006년 6월 29일자 <문화일보>에는 정몽구 회장의 보석과 관련한 기사가 실렸다. 법원이 피고인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주기 위함이고 경영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에 정회장의 보석을 결정 했다는 내용이다. 또 29일자 신문에는 ‘현대車 국제 경쟁력 높이 평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는데, 검찰과 법원이 최근 현대 자동차가 자동차평가사들의 품질조사에서 1등을 하고 현대차에 대한 조사가 국제적 거래를 비롯한 글로벌 경영에 차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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