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양의 북벌에 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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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융중대책의 실현안 : 북벌
Ⅱ <출사표>를 통해본 북벌의 정당성
Ⅲ 지정학적 배경
Ⅳ 사료를 통해 본 북벌
ⅰ 정사 『삼국지』
ⅱ『삼국지연의』
Ⅴ 위의 북벌인식
Ⅵ 왜 북벌 인가?
(북벌이 가지는 실효성에 관한 검토)
ⅰ 공격인가? 방어인가?
ⅱ 의도된 북벌 실패설의 제기
ⅲ 제갈량 사후, 강유의 북벌
Ⅶ 북벌의 역사적 입지
본문내용

Ⅰ융중대책의 실현안 : 북벌
사마광의 《자치통감》에는 ‘사위지기자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뜻이다. 이 말처럼 ‘삼고의 예’로 자신을 알아준 유비(161-223)에게 보인 제갈량(181-234)의 충심은 그 믿음에 대한 보답을 뛰어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제갈량은 유비를 군주로 받든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촉을 부흥시켰고 지켜갔다. 또한 한 황실의 위업을 달성하고 선주의 뜻을 이어가기 위하여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북방정벌(이하 ‘북벌’)‘을 감행했다.
그렇다면 당시 삼국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우리는 위 ․ 촉 ․ 오 라는 삼국정립의 상황을 두고 대등한 권력분립의 입장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는 삼국의 혼란했던 당시 상황과 위의 독주였던 삼국의 형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후한의 붕괴로 삼국의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위가 독주하던 상황 속에서 손권(182-252) 의 오나라와 유비의 촉나라는 약소국에 불과했다. 또한, 제갈량을 맞아들이기 전까지의 유비는 어느 세력도 가지지 못한 채 무너져 가는 한 왕실을 그저 관망해야 하는 입장에 불과했다. 이에 제갈량은 ‘융중대책’을 유비에게 제시한다. 즉, 융중대에서 이루어진 유비 와 제갈량의 대화 속에는 천하삼분을 거쳐 위를 타도하자는 실로 거대한 계획이 담겨있는 것이다. 당시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촉을 바라본다면 제갈량은 분명 가능성 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 격이었다. 하지만 제갈량은 유비에게 가능성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삼국정립을 가능케 했다. 제갈량을 얻은 유비는 이후 촉과 익주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촉은 유비의 죽음을 맞고 후주 유선( 207~271)이 제위에 오르게 되고 삼국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참고문헌
진수 저/ 김원중 역, 『정사 삼국지』권5, 「촉서. 제갈량전」, 신원출판사, 1994
진수 저/ 김원중 역, 『정사 삼국지』권5, 「촉서. 후주전」, 신원출판사, 1994
진수 저/ 김원중 역, 『정사 삼국지』권5, 「촉서. 선주전」, 신원출판사, 1994
진수 저/ 김원중 역, 『정사 삼국지』권1, 「위서. 명제기」, 신원출판사, 1994
제갈량 저/박동석 역,『제갈량집』, 홍익출판사, 1998
야마구치 히사카즈 저/ 전종훈 옮김, 『사상으로 읽는 삼국지』, 이학사, 2000
진순신 저/ 권순만외 4 옮김,『중국의 역사』권5, 한길사, 1995.
나관중 저/ 황석영 옮김, 『三國志』권 8, 창작과 비평사, 2003
나관중 저/ 황석영 옮김, 『三國志』권 9, 창작과 비평사, 2003
나채훈 저, 『삼국지 신문』권3, 실천문학, 1997
세토 타츠야 저/임희선 역, 『삼국지 100년 전쟁』, 애니 북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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