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사] 학자 및 정치가로서의 김부식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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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고려의 역사계승인식
2-1. 건국초기
2-2. 문벌귀족시기
2-3. 무인집권기
2-4. 대몽항쟁기
2-5. 원간섭기-고려말
3. 정치가로서의 김부식
4. 학자로서의 김부식
5. 맺음말
본문내용
이후 고려는 광종의 왕권강화를 거쳐 문벌귀족 중심의 귀족사회를 이룩한다. 특히 문종에서 인종에 걸친 약 100년간은 우문정치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로, 이 시기 정도에는 고려 지배층을 문벌귀족이라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종대에 이르러, 북방에는 여진의 금이 등장하면서 고려에 점차 압력을 가해오게 되자 그동안 유교정치에 의해 주춤해진 북진운동이 다시금 고개를 들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귀족사회의 중심세력으로써 유학파 관료인 김부식이 중심이 된 개경파와 정지상, 묘청의 ‘서경파’의 충돌은 불가피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 개경파와 서경파의 갈등이 대표적으로 표출된 사건이 ‘묘청의 난’이다. 그러나 개경파가 서경파를 진압함으로써 고려는 다시금 유교정치를 이어나가게 되며 따라서 이 시기에 편찬한 『삼국사기』는 유교적 사상에 근거하여 쓰여졌다.
또 이시기엔 신라의 왕족과 귀족층이 대거 개경으로 이주하고 성종 조엔 최승로 등과 같이 이들이 핵심적인 정치세력의 하나로 등장하면서 신라의 전통과 문화가 고려시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확대되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나라라는 의식 역시 높아가게 되었다.

12세기 말 이후 고려는 약 100년간 무인집권 시대를 맞이한다. 무인반란 자체가 문인 유학자에 대한 반발에서 일어난 것인 만큼 유학적 바탕에서 쓰여진 『삼국사기』의 역사인식은 무인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 시기 유학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쇠퇴하게 되고 대신 유불도 삼교를 절충하는 사상풍조가 등장하면서 역사의식도 유학적이기보다는 종교적 신비주의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이시기에 저술된 이규보의 『동명왕편』(1193)은 이시기 집권층 지식인의 역사의식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를 쓴 목적은 당시 고려에 대하여 군신관계를 강요해오던 금에 대한 자존심 회복이었다. 그리고 이 자존심의 근거를 동명왕을 통해 고구려의 건국정신에서 찾으려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안으로 고구려 전통을 낮게 평가한 『삼국사기』에 대한 반발인 동시에 밖으로는 고려의 자존심을 훼손한 금의 압력에 대한 저항의 일면을 보여주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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