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마케팅] 비비안 웨스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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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Vivienne Westwood소개
2.Vivienne Westwood 연혁
3.Vivienne Westwood선정이유
4.Vivienne Westwood가치관
5.Vivienne Westwood성공분석
6.Vivienne Westwood 닮고 싶은점
본문내용
디자이너 Vivienne Westwood (비비안 웨스트우드)

1941년 출생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영국적인 디자이너로 사랑 받고 있다.
그녀는 1971년 킹로드에 '렛잇 록 (Let It Rock)'이라는 숍을 오픈 하면서 디자이너로 첫발을 내딛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스타일을 찾지 못해 여러 번 숍의 이름이 바뀔 정도 였으나 3년 뒤에는 펑키 스타일로 정착,'섹스'라는 이름이 부티크로 자리 잡았다.

1976년, 당시 그녀의 연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 '말콤 맥라렌'은 그가 매니저로 있는 영국 밴드 '섹스 피스톨'의 의상을 그곳에서 구입하면서 그녀가 곧 스타 디자이너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이후 전세계에 펑크 열풍이 뜨겁게 달아 올랐을 때, 웨스트우드는 이미 패션 아방가르드의 프론티어로 인정 받고 있었다.

웨스트우드의 첫 컬렉션은 1981년 'Pirate'이라는 이름으로 영국에서 열었다.
그녀의 첫 무대는 전통적이면서도 독특한 아이디어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명성을 확고히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83년에는 파리에서 쇼를 열었으며, 84년에는 그녀를 가장 애호하는 도쿄에서 '캘빈 클라인', 장프랑코 페레'와 함께 패션쇼를 가졌다.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도발적인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은 전세계에 걸쳐
그녀의 애호가를 보유하면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스트리트 스타일보다 오뜨 꾸뛰르에 관심을 갖게 된 웨스트우드는 90년에 남성의류 컬렉션을 선보였다.
90년과 91년 2년 연속 '올해의 브리티시 디자이너'로 선정되었으며, 영국 패션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아 'OBE‘를수상하기도 했다.
가장 영국적인 울과 트위드, 타탄, 리넨을 사용함으로써 그녀는 브리티시 스타일의 전형이 되었으며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퀄리티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98년 그녀는 '퀸즈 엑스포트 어워드'를 수상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는 1992년 켄싱턴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을 방문하면서 속옷도 걸치지 않은채 속이 휜히 비치는 드레스를입었다.카메라 플래시 탓에 나체에 가까운 모습이 드러났고 그런 사진이 여러 신문들을 장식했다. 당시 51세였다. 이듬해에는 그에게서 디자인을 배우던 26살 연하인 제자와 결혼해 지금까지 연인이자 동료로 살아가고 있다.웨스트우드는 나이가 들수록 과격해지는 사람이다. 평범한 이웃집 아줌마같은 외모지만 파격적이고 섹시한 옷을 만드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컬렉션을 열때마다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동시에 즐거움을 선사한다. 커다란 엉덩이 장식이 달린 스커트와 거대한깃털 목도리로 화려한 무늬를 새긴 코르셋,짧은 속바지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부츠,블라우스위에 브래지어 덧입기,스카프를 둘러쓰고 중절모 덧쓰기 등 그의 패션은 고정관념을 거부하는게 아니라 아예 깨부순다.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펑크한 외모와 돌출 행동 그리고 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재담가이기도 하다. 그는 현대문명을 쓰레기라고 매도하며 영화는 실패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며 일절 보지 않는다. 남과 달라야 하며 현대적인 것은 모조리 배척한다는 그의 고집스러운 태도가 남다른 패션을 창조하는 원천인 듯 하다.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매번 유행과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도 변함없이 여성스런 곡선을 살리는 테일러링의 기법으로 제작된 수트 스타일과 과감한 실루엣의 응용으로 한층 더 여성스러우며,글래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다양하고 밝은색의 꽃문양과 면,마,실크소재의 사용으로 실용성도 갖춘 옷들이다. 비비안 특유의 블라우스류는 몸에 완벽하게 달라붙으며,절개선이 들어간 타이트 스커트와 린넨으로 끝마무리된 니트류가 주를 이룬다. 섹시한 실크소재의 코르셋 종류도 빠지지 않았다.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의상은 크게 4가지 상품군으로 분류된다. 가장 고가인 골드 라벨은 오뜨꾸띄르(맞춤복)으로 생산은 거의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이뤄진다. 이브닝 드레스와 코르셋 등과 같은 섬세한 의류들은 오뜨꾸띄르 전통에 따라 작은 아뜰리에에서 두세명의 수작업에 의해 진행된다.레드라벨은 모든 상품을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며 골드 라벨보다 캐주얼하면서 상업적인 디자인으로 밝고 경쾌한 느낌의 의상이 주를 이룬다. 레드 라벨의 셔츠와 니트류는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지속적으로 갖고 있다. 1996년에 런칭한 남성복 라인은 전 라인 모드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며 남성복 라인의 전 디자인은 25살 연하인 비비안 자신의 남편이 직접 디자인하고 있다. 섹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의 의류가 주종을 이룬다.앵글로매니아는 1998년에 출시된 캐주얼 의류군이다. 활동적이면서 캐주얼한 데님 소재의 사용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생산 모두 이탈리아에서 제작된다.영국 전통의 옷감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 해리스 트위드와 스코티쉬 타탄,아이리쉬 린넨 등 울종류는 매 시즌마다 중요 소재로 활용되고 있으며,타탄소재의 의상은 비비안본인도 자신을 위해 디자인하고 제작할 만큼 즐겨쓰는 소재이다.
영국 패션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펑크 룩'의 창시자 어제의 펑크 룩의 마돈나.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던 펑크 스타일의 창시자로 불리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현재 영국을 대표하 는 패션의 여왕이다. 1941년 출생의 웨스트우드 부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점잖은 영국인들을 끊임없이 놀라게 했다. 1973년 킹스 로드에 부티크를 오픈. 70년대 중반에는 당시의 파트너 말콤 막 라렌과 함께 '펑크 룩'을 만들어냈고, 81년에는 '해적' 패션을, 그리고 그런지 룩의 원조로 꼽는 '아메리칸 파이어니어' 스타일의 선동자였다.웨스트우드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미래를 창조해내는 방법'이라는 패션 철학을 갖고 있다. 그녀가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는 18 세기 이전의 살롱 문화. 18세기의 진귀한 가구들과 그림들, 그리고 장식품들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 특히, 크리놀린이나 버슬, 러플, 트레인, 웨이스트 니퍼 등을 부활시켜 프랑스 혁명 이전의 아름다운 시대를 꿈꾸는 도전적인 금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벼슬의 여왕으로 불리는 웨스트우드는 영국에서 매년 뽑는 최우수 디자이너에 2번 연속 선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1992년에는 영국 여왕의 훈장을 받았다. 미국 언론에 의해 선정된 세계 패션계의 최우수 크리에이터 6명 중 유일한 여성으로 패션에 관한 한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세계의 패션을 주도해 나가는 영국 패션계의 마지막 선지자로 기대되고 있다.
1990년과 1991년 2년 연속 '올해의 브리티시 디자이너'로 선정되었으며, 영국 패션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아 'OBE'를 수상하기도 했다. 가장 영국적인 울과 트위드, 타탄, 리넨을 사용함으로써 그녀는 브리티시 스타일의 전형이 되었으며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퀄리티를 확보할 수 있었다.women's wear daily출판사는 그녀를 세계 6대 디자이너로 선정했으며 ITV 텔레비젼은 그녀와 관련된 모든쇼를 방영했다. 1991년 마가렛 대처로 변장해 상류층의 잡지인 Tatler의 표지에 실림으로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2년에 Bordeaux에 있는 CAPC박물관은 그녀의 회고전을 준비했으며 1994년에는 Leiden에 있는 Stedelikj박물관에서 그녀의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199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를 수상했으며 왕실 예술까의 일원인 그녀는 1989-1991년 사이에 Vienna대학의 패션교수로 재직했다. 1998년 그녀는 '퀸즈 엑스포트 어워드'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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