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의 양면성과 실학의 올바른 정의 -안정복의 동사강목을 중심으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0.08.31 / 2019.12.24
  • 8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4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1. 서론
2. ‘실학적’ 성격
2.1. 자국중심의 역사인식
2.2. 마한정통론
2.3. 역사 고증
3. ‘비실학적’ 성격
3.1. 강목체
3.2. 기자조선
3.3. 성리학적 가치관
4. 결론
본문내용

2.3. 역사고증
셋째로, 『동사강목』은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역사서술과 고증을 보여준 근대적인 역사서이다. 실학사상의 전개를 제1기 ‘경세치용 파’, 제2기 ‘이용후생 파’, 제3기 ‘실사구시 파’로 나누어보면, ‘실사구시 파’는 선행시기의 실증적 방법만을 계승하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고증학적 연구에 치중했다. 즉, 이들은 학문 그 자체가 목적이었고 엄격한 객관적 태도로써 사실을 밝혀내려 하였다. 자기의 정치․사회적 이념을 염두에 두고 주관적으로 고전을 해석하던 선행시기의 실학파들과는 달리, 학문을 위한 학문, 곧 근대의 과학적 연구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 가운데 『동사강목』은 ‘경세치용 파’ 또는 ‘성호학파’의 학문적 달성 가운데서 가장 큰 업적의 하나이다. 그러나 ‘경세치용 파’의 사관 및 사론을 집약적으로 담아 놓았을 뿐 아니라, 개개의 사실의 성실한 고증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실사구시 파’의 선구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Ibid., pp.32-33.
치밀한 역사고증은 특히 부록의 『고이』․『괴설변증』․『지리고』 등에 잘 나타나있다. 수권에서는 종래 역사서에 대한 문헌비판을 가하고, 별도로 부록에서 고증을 하여 그 고증한 것을 본문에 옮겨 쓰는 방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강세구(2), op.cit., p.164.
역사서 서술에서는 계통, 찬역,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기 위해 사실에 대한 엄격한 고증이 필요하지만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동국통감』 등 기존의 역사책은 사실이 지나치게 소략하거나 고증이 분명하지 않다고 안정복은 생각했다. 따라서 『고이』에서는 동사강목 본문에서 제대로 서술할 수 없었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대한 고증을 했고, 『괴설변증』에서는 비판적인 입장에서 단군신화를 비롯한 각종 건국신화를 다루었으며, 『지리고』에서는 우리나라의 역대 강역과 지명을 고증하였다. 강세구(2), op.cit., p.104.
비록 문헌중심의 고증이기는 했지만 주변 학자들과 논의를 충분히 거치는 등 개방적으로 진행했으며 초고를 완성하고 난 후에도 19년이라는 재고기간을 갖기도 했다. 강세구(2), op.cit., p.170.
또한 『동사강목』에서는 『고려사』의 세가와 열전, 그리고 기타자료에서 내용이 서로 어긋나는 부분을 정리․대조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근거와 함께 대며 하나의 내용을 따랐다. 박종기, op.cit., pp.139-141.
이는 안정복이 『동사강목』 편찬에 있어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예로, 안정복은 무신기의 최씨정권에 대해서도 사적인 판단을 피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 했다. 다른 역사가들의 의견을 인용하고 이 시기에 관해 부차적인 논평을 언급한 것이다. 물론 18세기 조선의 학자들이 일반적인 관점이 반영되어, 무신정권시대를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사실의 진위를 분석하려 하지 않는 면은 한계이다. 에드워드 슐츠, 「안정복과 동사강목 : 고려무신정권에 관한 그의 견해에 대한 비평」, 『한국실학연구』, 제11호 (한국실학학회, 2006)
어찌되었건 이러한 치밀한 고증과 객관적 서술은 후대에 인정받았고, 유교 역사학에 대해서 인색한 평가를 하는 일제시기 민족주의 역사가 단재 신채호 선생조차 ‘안정복의 역사 연구의 정밀함은 뛰어넘을 사람이 없으며, 지리의 잘못을 교정하고 사실의 모순을 바로잡는 데 가장 공이 많았다.’고 하였다. 박종기, op.cit., p.155.


참고문헌
강병수, 「조선 후기 성호학파의 단군조선 인식」, 『선도문화』, 제2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 구원, 2007.
강세구, 『동사강목연구』, 서울 : 민족문화사, 1994.
강세구, 『순암 안정복의 학문과 사상 연구』, 서울 : 혜안, 1996.
강세구, 『성호학통 연구』, 서울 : 혜안, 1999.
김세윤, 「서평 : 강세구 著, 《 동사강목연구 》」, 『역사학보』, 제149호, 역사학회, 1996.
김영심․정재훈, 「조선 후기 정통론의 수용과 그 변화」, 『한국문화』, 제8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 연구원, 2004.
박광용, 「기자조선에 대한 인식의 변천 : 고려부터 한말까지의 사서를 중심으로」, 『한국사론』, 제6 호,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80.
박종기, 『안정복, 고려사를 공부하다』, 서울 : 고즈윈, 2006.
안정복 外, 『한국의 역사사상』, 이민수․남만성 外 역, 삼성판 세계의 사상, 제35권, 2판, 서울 : 삼성 출판사, 1990.
에드워드 슐츠, 「안정복과 동사강목 : 고려무신정권에 관한 그의 견해에 대한 비평」, 『한국실학연 구』, 제11호 , 한국실학학회, 2006.
한영우, 「안정복의 사상과 동사강목」,『한국학보』, 제14호, 일지사, 1988.
한영우 外,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 푸른역사, 2007.
홍원석 外, 『실학사상과 근대성』, 한국철학총서, 제9권, 서울 : 예문서원, 1998.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실학]정약용 발표자료
  • 조선 후기의 신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된 논리이며, 이차적으로는 정조가 도모했던 왕권 중심의 통치 구도를 수립하기 위한 정치 이론으로서 구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약용이 이처럼 무위와 유위를 같은 차원의 병렬적 대립항으로 이해한 동기는, 정치란 통치자의 도덕적 감화력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실천에 의한 것이며, 또한 정치란 행위 영역, 실천의 차원에 속한 것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함이었다. ③ 감찰 국가정

  • [교육] 교육 사상가
  • 중심이며 교육적 가치는 아동이 필요로 하는것에 의해 결정되어야한다.(2)페스탈로치의 교육방법과 프뢰벨의 아동개념 받아들임- 아동을 교욱과 정의 중심에 놓는 아동 중심 교육 실시 주장(3)전통주의자들 비판- 진보주의 교육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듀이는 파커를 진보주의의 아버지라 묘사7)손다이크(1) 고양이를 사용한 ‘문제상자’의 실험으로 시행착오법 이라는 학습이론 창시(2) 시행착오법 은 사람이나 동물이 새로운 문제를 해

  • [사학] 붕당정치의 형성과 전개
  • 정의 지향성이 좌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치․경제․사회․교육 문화부문에 있어서 중요정책들은 붕당의 결집(結集)과 영속성(永續性)을 이끌어 가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즉 붕당은 투쟁하기 위한 투쟁도, 분열하기 위한 분열도 아니었다. 분당이 대립되고 분열될 때에는 정통성문제와 국가질서와 같은 중요한 문제가 기본요인이 되었다.여기에서 더 나아가 붕당을 ‘정당’의 발생으로 보는 시각은 1923년 안확의 에 의해 시

  • 청주대 사이버강의 한국사 기말
  • 조선 후기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됨02. 붕당정치와 탕평정치1) 붕당정치▲ 붕당정치의 배경- 사림의 정국 주도• 16세기 선조가 즉위하면서 향촌에 세력기반을 다져오던 사림세력이 대거 중앙 정계로 진출• 정국을 주도하게 됨- 사림 세력 간의 갈등• 명종 때 이후 정권에 참여해 온 기성사림들은 척신정치의 청산에 소극적• 선조 이후 새롭게 정계에 등장한 신진 사림들은 더욱 철저하게 사림 정치의 실현을 강력하게 내세움⇨ 척신정치

  • 한국사 요약정리
  • 중심, 수련도교2) 고려: 서민층 침투, 소재초복의 초제 거행: 국가안녕과 왕실번영 기원3) 조선전기: 소격서 초재 거행(단군: 민족의식 고취)4) 조선후기: 조선왕조 부정(비기, 동학, 민화)3. 사례: 1) 고구려: 을지문덕 오언절구(知足), 연개소문 장려, 사신도 벽화2) 백제: 산수무늬벽돌(산경문전), 사택지적비, 무령왕릉 지석(매지권)사신도 벽화, 백제금동대향로3) 신라: 세속5계(임전무퇴), 화랑명칭(국선, 풍류도), 최치원(쌍계사 진감선사비)4) 발해: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