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사] 몽고풍으로 살펴본 고려와 원나라의 교류에 관하여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0.08.14 / 2019.12.24
  • 6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4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1. 들어가며
2. 고려양(高麗樣)
3. 몽고풍(蒙古風)
1) 변발
2) 철릭(첩리)
3) 식문화
4. 나오며

본문내용
초록

원나라는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아 7명의 공주를 고려의 국왕에게 시집보냈다. 이 과정에서 양국 사이의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고려에서 유행한 몽고의 풍습을 몽고풍(蒙古風)이라하고, 원나라에서 유행한 고려의 풍습을 고려양(高麗樣)이라고 한다. 몽고풍은 비록 처음에는 몽고의 풍습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려의 풍속에 맞게 변형되어 우리 고유의 풍속으로 남았다고 볼 수 있다.

1. 들어가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의 엉덩이에는 멍 자국 같이 보이는 시퍼런 반점들이 보인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몽고반점’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부르는 까닭은 몽고반점이 몽골계 인종이 지니는 습성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몽골인은 중국의 송(宋)나라가 지배하고 있을 당시에 북쪽에서 요(遼)와 금(金)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12세기 후반, 금의 통치력이 약화되자 세력을 키워 강력한 통일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테무진(Temujin)이 몽골 지역을 통일한 후에 그는 전체 부족장들의 회의인 쿠릴타이(Khuriltaim)에서 최고 지도자로 추대된다. 이 사람이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칭기즈 칸이다.
칭기즈 칸은 몽골 부족의 정치 ․ 군사 조직과 제도를 개혁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고 일원적 지배 체제를 확보하였다. 그는 이 기세를 바탕으로 세계 곳곳을 정복하여 대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의 후예들도 정복 사업을 지속해서, 오고타이(Ogotai)에 경우 유럽 대원정에 나서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까지 진출하였다. 이광호,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세계문화사』(서울 : 예영커뮤니케이션, 1996), p. 141
몽골는 태조(太祖) 칭기즈칸부터 세조(世祖) 쿠빌라이에 이르는 70여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였다.
이 중에서 우리가 현재 중국의 왕조 중 하나로 알고 있는 원을 세운 사람은 세조 쿠빌라이이다. 그는 칸의 자리에 오른 후 수도를 몽고 내륙에서 대도(大都, 지금의 북경)로 옮기고 국호를 바꾸었다.(1271) 우경윤,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History of world: 동양편: 고대에서 현대까지]』(서울: 두리미디어, 2004), p. 173
또한 중국식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여, 중앙 집권적 관료 제도를 채택하고 송 대의 제도를 모방하였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원간섭기의 측근정치와 개혁정치설
  • 원간섭기:측근정치설과 개혁정치설Ⅰ.들어가며우리는 조는 8개의 주제 중 원간섭기의 측근정치와 개혁정치설에 대해 알아보았다.위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고려말기의 정치상황을 이해함으로 한 국가가 힘없이 무너져가기 전의 단계와 이를 해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어서였다. 고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강성했던 로마나 원나라 역시 결국은 고려와 같은 전처를 밟았고 밟게 된다는 점, 멀리 갈 것도 없이 고구려 백제 조선 역

  • 한국 중세문학 고려시대문학 시가,고려가요, 한국 중세문학 고려시대문학 가전체문학,서사문학, 한국 중세문학 고려시대문학 청산별곡,한림별곡,공방전
  • 고려 長歌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詞문학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은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에 매우 특이한 시가라고 하였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고려시대는 귀족문학과 평민 문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시기가 원나라의 침입과 국정의 문란이 극도에 달한 고려후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서 고려중엽부터 있어 왔던 시조가 평민문학

  • [국문학] 바다에 대한 문학 주제학적 연구-초월과 현실의 양면성을 중심으로
  • 고려 때 제주에서 원나라를 가게 되면 명월포에서 떠났는데, 순풍을 만나 바른길로 들어야 이레가 꼬박 걸려 백해를 지나서 바다를 건넌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우리가 표류하여 온 것이 바른 길이었는지 허튼 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다행히 백해에 들어왔으니 생각건대 아마도 중국 땅이 가까울 것이다. 만일 중국 해안에 닿게 되면 중국은 우리와 가까운 이웃 나라이니 온갖 편의를 보아주어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순간 생사가 다 바람에 달

  • 한국사 - 공민왕의 일대기
  • 원나라는 피지배층 한족의 반란인 홍건적의 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1354년 음력 7월부터 1356년까지 원나라의 지원 요청으로 최영, 이방실, 안우, 김용, 정세운, 유탁(柳濯) 등은 병력 2천을 이끌고 원나라에 파병되었다. 파병군은 고려종정군(高麗從征軍)이라 불렸다. 파병 후 귀국한 장군들이 원나라의 몰락을 상세히 보고하여, 공민왕의 반원개혁에 힘을 실어주었다.1356년(공민왕 5) 음력 4월 공민왕은 당시 원나라의 기황후(奇皇后)를 등에 업고 권

  • 고전문학 -불교사상
  • 고려후기 선승의 문학과 신흥사대부의 문학은 중세전기문학의 고답적이며 장식적인 기풍에 반발하고, 새롭게 조성된 시대정신과 밀착된 중세후기문학을 이룩하는 사명을 함께 수행하면서 서로 밀접하게 교류했다. 무신란과 몽고란을 겪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을 때 민족사가 위기를 타개할 정신을 찾으려고 양쪽 다 왕성한 창작 의욕을 보였다. 선승은 낡은 기풍을 파괴하려는 데는 더 과감하고, 사대부는 역사의 움직임을 깊이 주시하고자 했기에 서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