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에네켄`으로부터 시작되는 멕시코 이주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0.08.14 / 2019.12.24
  • 5페이지 / fileicon docx (MS워드 2007이상)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1. 멕시코 이민사
2. 후손들의 이야기
3. 멕시코 한인사회의 붕괴
4. 맺음말
5. 참고자료
본문내용
“여기 사람들은 한인들을 보면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어. 치노들은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았거든.” 〇〇〇(?,??)

이와 같은 말이 생긴 이유는 한인들이 ‘코모 치키토(Como Chiquito)’와 ‘코모 포키토(Como Poquito)’를 잘못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포키토(Poquito)’ 양이 적다는 말이고, ‘치키토(Chiquito)’는 크기가 작다는 말인데 어린이를 칭할 때도 사용한다. 한인들이 음식을 적게 먹는다는 표현을 ‘코모 치키토’라고 잘못 표현해서 어린아이를 먹는 인종으로 와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만큼 현지 사회에서 한인들을 적대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대도시에 살고 있는 이민 후세는 초등학교 내지 중학교 과정을 마칠 수 있고, 환경이 조금 더 좋은 사람들은 대학교까지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농장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직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금은 현지에 정착해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멕시코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이민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뿐 아니라 이민 후에도 고국과 연결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적인 정체성을 쉽게 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한국계 멕시코인도 아니고, 멕시코계 미국인도 아니야. 단지 멕시코인일 뿐이야." 호르혜 (남,??,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한 한인3세)

또한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 문화에 적응한 사람들도 있어서 그들에게 한국인의 후손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과연 그들을 위한 일인지,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한다.

3. 멕시코 한인사회의 붕괴
인조섬유의 발달로 인해 에네켄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하여 멕시코의 한인들의 경제적 빈곤이 더욱 심해졌다. 이 과정에서 전체인원의 1/4이 넘는 280여명의 한인이 사탕수수 농사로 호황을 누리고 있던 쿠바로 떠나게 되면서 멕시코 한인의 결집력이 약화되기도 하였다.
1940년대에 한인회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한인회의 주축이 된 이민 2세대는 대부분이 멕시코 사회에 동화되어 있었고 언어 또한 상실한 상태였다.
이민 2세대가 멕시코에 쉽게 동화되어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민 2세대의 한 할아버지는 일부러 자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멕시코 말을 못하는 그에게는 한국어가 가난의 상징이었고 자신의 가난을 물려주기 싫은 마음에 자식들에게도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한인은 치노라고 불리며 차별을 받았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놀림을 받았는데 이름(성)이 한국 이름이라든지 부모가 한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대우를 받았다. 2세들은 대부분이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 부모들이 귀국의 꿈을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아서 멕시코의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구비서류의 미비 셋째, 한국인의 입학거부 등의 복잡한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62년 대한민국과 멕시코가 국교를 수립할 당시 한인 사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한인회의 활동은 매우 침체되어 있었다. 많은 한인이 산재하여 살고 있는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지방회는 유명무실하였고, 멕시코시티의 묵경지방회도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대사관의 지원으로 묵경지방회가 복원되었지만 한인 후손들의 구심점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인 후손들 간의 결집력이 약하였고 한인회에 대한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후기 이민자가 멕시코에 정착하는 것은 국교가 수립된 1960년대부터이며, 유학생이나 사업을 위하여 많은 한국인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후기 이민자 중심의 한인사회가 형성되면서 명목상으로나마 유지되어 온 한인회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한인회는 이질적인 두 집단을 결속시키는 유일한 조직체였다.
1979년부터는 한인회 회장이 후기 이민자들에게서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후기 이민자들의 권익과 다양한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체로 전환되지 못하면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후기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권익과 친목을 대변할 수 있는 한인경제인연합회를 1994년에 구성하였고, 1996년 후기 이민자가 중심을 이루는 현재의 한인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후기 이민자 중심의 한인회가 창설되면서 기존의 한인회는 한인 후손들만의 조직체로 전락하였고 활기를 잃으며 와해되고 말았다. 또한 한인 후손들과 후기 이민자들 간의 명목적인 관계조차 단절되었으며 멕시코 한인 사회는 후기 이민자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4. 맺음말
현재 멕시코의 한인들은 멕시코 각지에 흩어져 자리를 잡고 지금은 정치, 경제 분야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멕시코 시민으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채무에 의한 이주 노동자로 현재의 자리를 잡기까지 몇 세대 동안의 가난과 차별의 어려움을 견뎌낸 것이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나가있는 초기 이민 세대들을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어려움 속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세계화의 진행 속에 그 사람들의 역할에 주목하고 한국과 그들의 나라의 가교 역할에 기대를 하고 있다.
척박한 조건을 극복하고 전 세계 각 나라에서 정착해 살고 있고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경제적, 인종적으로 차별하는 태도는 모순이며 이기적이다.
불법체류 이주 노동자 20만 명을 비롯하여 전체 이주노동자가 40만 명인 지금, 유엔에서 보장한 이주민협약도 지키지 않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며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피부색에 따른 인종적 차별, 순혈주의에 의한 정주화 반대가 지금 우리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태도이다.
참고문헌
참고 문헌
김원동, 2003 《이민 100년 그리움 100년》 서울 : 리북
이강혁, 2008 《라틴아메리카역사 다이제스트 100》 서울 : 가람기획
이자경, 1998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 - 제물포에서 유카탄까지》 서울 : 지식산업사
이자경, 2005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 :에네켄 가시밭의 100년 오딧세이 上, 下》 서울 : 한맥문학출판부
정경원, 2005 《멕시코 쿠바 한인 이민사》 서울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논문
박영미, 2003 <중남미문학 : 하와이 한인이민과 비교한 멕시코 초기 한인 이민과정에 대한 고찰 -제물포항에서 유카탄 에네껜 농장으로(1904-1905)->
월간 말, 1995 <멕시코 에네겐 농장 한인후예들의 흘러간 90년>
이종득, 2004 <멕시코 한인 후손들의 정체성 연구: 현황과 정책 -멕시코시->
이자경, 1998 <멕시코 한인 이민사회와 교회>
주종택, 2000 <멕시코의 경제위기와 농촌지역의 국제 노동이주>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애니깽 후손 - 3만여명의 코레아노들 :멕시코 한인 이주 100주년>

신문기사
매일경제 <100년전 에네켄 노동자 실태> 2005.01.16
신동아 <100년 만에 찾아낸 멕시코 이민 1세대 신상명세서> 2005.08.01 통권 551호 p524 ~ 534
연합뉴스 <'에네켄' 후예 한인후손, 멕시코 상원의원되다> 2006.07.04

사이트
http://blog.daum.net/sharonk
http://www.kyunggi50.com/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교육과 사회] 다문화 교육
  • 민족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학습 방식의 특성, 방언(흑인 영어)의 교육적 의미, 이중언어교육의 시행 등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 이에 따른 재정이 마련되고 있다. 그리고 소수 민족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의 이해를 위한 교육과정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다문화의 이해를 위한 교육과정은 1960년대 중반부터 연구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 집단에 관련된 주제를 교과서에 포함시키기 시작하였고, 교원연수에

  • [해외지역연구] 유럽4개국(스웨덴 터키 독일 카자흐스탄)에 관한 연구
  • 민족은 정말 손님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대접을 잘하는 민족이다.김상철(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한국학과 교수)스웨덴 국가 정보1.국가 명2.수도 / 위도 / 경도 / GMT3.국가 개요4.인구5.국어/통용어6.종교7.종족8.이민족9.전기, 규격10.반입제한11.기후(평균기온)12.화폐단위13.화폐종류14.근무시간15.주거환경16.교육환경17.병원, 약국18.레저여건19.치안상태19.치안상태21.공항22.버스23.택시24.기차25.스웨덴의 상관습26.문화적 금기사항27.거래

  • 미국 내의 스페인어 미국내 히스패닉 인구 통계적 측면
  • 이주자에 대한 반감이나 영어가 아닌 언어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 미국인들은 문화적, 언어적 다양성에의 접근과 이해가 필수이다. 또한 미국 내외의 히스패닉들은 미국 내의 스페인어를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 언론에서 히스패닉을 칭찬하면서 긍정적인 기사를 싣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스페인어의 큰 언어학적 가치에 대한 기사를 본적은 없다. 대중매체는 스페인어를 증진시키고 긍정적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큰 역할을 해야 한다. T

  • 다문화주의와 인종차별
  • 이주자, 원주민, 소수민족 등의 문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데 있다. 이것은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자신들의 자존심을 높여 주류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의욕을 유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것을 위해서 다문화주의 를 추진하는 정부는 전통문화 중에서 실제 사회생활의 통용수단인 소수민족의 언어 유지와 교육에 대한 공적 및 법적 지원을 전폭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왜 냐하면 현실적으로 의사소통의 수단인 언어가 동일성과 이질성을

  • [미국문화의이해] 패스트푸드제국
  • 시작했다 ★ 장 점 자연식을 하자는 운동의 일종으로 보아도 된다. 음식물에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별도의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자연히 정상적인 체중을 유지한다. 음식을 천천히 준비함으로써 마음의 여유도 찾을 수 있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므로 화기애애한 식탁을 만들 수 있다. 천천히 오래 음식을 먹음으로써 소화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으므로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된다. 환경을 살리고 인류를 살리자는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최근 판매 자료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