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도사] 조선전기 과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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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제도사 국제경영│
Ⅰ. 머리말

1. 연구목적
2. 연구범위
3. 연구방법
4. 연구구성


Ⅱ. 과전법의 내용

1. 과전법의 등장배경
2. 과전법의 주요내용


Ⅲ. 과전법의 문제점

1. 급전제의 모순
2. 국가의 토지지배권 강화


Ⅳ. 과전법의 문제점을 통해 본 발전방향

1. 토지 소유의 상한선 제시
2. 부과세 부여


Ⅴ. 맺음말

1. 요약 및 결론
2. 시사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Ⅱ. 과전법의 내용

1. 과전법의 등장배경

고려 말에 조성된, 봉건적 토지제도의 극단적인 파탄상태는 일정한 시기에는 반드시 개변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에 있었다. 광범한 인민들은 이 극악한 현상을 반대하여 각종 수단으로 투쟁을 계속하였는바, 그것은 고려왕권의 존속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되었다. 더욱이 인민들은 토지의 상실, 생활의 파탄, 대량적 유리 등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를 극복하면서 실지 무장으로써 장구하고도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약탈자 왜구들을 격퇴하고 있었다. 특히 이 무장역량들 가운데는 봉건국가 통제하의 군대 이외에 자연발생적 요소들이 많았고, 또 같은 군대 내에도 개별적 장군들이 사병(私兵)들이 많이 포괄되어 있었던 것으로서 특징지어진다. 이 모든 사실은 고려의 왕권을 극도로 미약하게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봉건 통치계급은 토지 및 인구관계에 있어서의 고려 말기의 파괴적 현상들을 오래도록 지속시키면서 자기의 봉건적 착취를 계속 보장할 수가 없었다. 토지가 소수의 겸병자들에게 집중되고 생산자들에 대한 착취가 무괘도적으로 진행되면서 인민의 유리도산이 심하여 토지가 황폐하고 생산력이 파괴되는 조건하에서는 봉건적 테두리 안에서의 단순한 재생산의 보장도 불가능하게 된다. 더욱이 이시기에 왜구침입의 피해는 이상의 국내 제 조건하에서 더욱 커졌으며, 또 그것은 반작용으로 국내의 제악조건들을 일층 조장하였다.
봉건 통치계급은 이상의 제 조건하에서 인민대중의 투쟁을 얼마간이라도 완화시키고, 그들을 다시 토지에 귀착시켜 생산력을 복구하며, 정상적으로 봉건적 착취를 보장하기 위하여 일정한 능동적 작용을 할 필요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것은 봉건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자기를 관철하는 발전의 법칙의 요구였다.
이 과업은 고려 말에는 겸병자들을 반대한 다른 봉건관료 그룹에 의하여 실현되었다. 이 때에 겸병자들 자신은 자기의 개별적 이익을 희생으로 하고 봉건 통치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이러한 과업을 수행할 수가 없었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것은 오직 통치계급 내부의 모순으로서 표현되는 반대적 요소들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박시형, 한국사와 토지, 신서원, 1961. pp.17~18

이 반대파의 대표자는 이성계였다. 이성계는 우왕 14년(1388) 5월에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을 단행하고 돌아와서 폭력으로써 왕을 폐위하고 그 아들 창왕을 세웠다. 이때에 그의 주요한 적인 최영도 살해하였기 때문에 실지 유력한 그의 정치적 경쟁자는 거의 없어졌다. 이리하여 그이 일파는 곧 사전제도에 개정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성계 자신의 집안은 원래 고려의 소위 세신대족은 아니었다. 그는 쌍성총관부 타도(1356) 이 후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 함경도지방의 대토호의 한사람이었다. 원래 함경도와 평안도지방은 고려에서 승인한 소위 사전(私田)은 없었지만 실지로는 이 지방에서 자연발생한 대 토호들과 또 일부 중앙의 권력자들에 의하여 많은 사전이 설정되고, 또 그들에 소속된 노비예속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성계일문은 바로 이러한 대토호의 가족이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참고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4권 <조선초기의 경제구조>, 탐구당문화사, 1994

이경식, <과전제도의 운영과 그 변동>, 일조각, 1982
김태영,<조선전기토지제도사연구>, 1983
이성무 <조선양반사회연구> 일조각, 1995
박시형 <조선토지제도사> 신서원, 1994
허종호 <조선토지제도발달사>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2
강민길 외 <한국사7 - 중세사회의 발전1> 한길사, 1995
정희남, 채미옥 <우리나라의 부동산가치와 평가제도에 관한 역사적 고찰> 국토연구원, 2000
박시형, <한국사와 토지>, 신서원, 1961
김태영, <조선 전기 토지 제도사 연구>, 지식산업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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