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 향가의 최고수 월명사, 한시의 뛰어난 작가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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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비감한 내면을 노래한 음유시인 월명사
2.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경계인 최치원
3. 시대와 불화한 천재들의 뒷모습

Ⅱ. 본론
1. 월명사
1.1 시대적 배경 및 인물탐구
1.2 작품감상 및 작품세계 분석
1.2.1 도솔가
1.2.2 제망매가
2. 최치원
2.1 시대적 배경 및 인물탐구
2.2 작품감상 및 작품세계 분석
2.2.1 최치원이 남긴 작품
2.2.2 작품의 특징
2.2.3 최치원의 작품 사상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3. 시대와 불화한 천재들의 뒷모습

월명사와 최치원은 신라시대 향가와 한시의 최고 작가였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달밤에 혼자 피리를 불며 거리를 배회한 월명사와 전국을 떠돌다가 가야산에 은둔한 최치원의 뒷모습에는 고독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의 행적은 왜 그리 쓸쓸했을까? 몸담았던 시대와 불화했기 때문이다.
산화공덕 의식을 치르려던 경덕왕에게 불려온 월명사는 이렇게 말했다. “승은 국선(國仙)의 무리에 속해 있으므로 향가나 알 뿐 범패(梵唄)는 잘 모릅니다.” 그러자 왕은 “이미 인연이 있는 승려로 지목되었으니 향가를 불러도 좋다”고 말했다. 이들 대화에서 국가적 의식은 불교식 범패를 부를 줄 아는 승려가 주관해야지 화랑에 속한 낭도승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삼국통일을 달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화랑 세력은 통일 이후 급속히 하강곡선을 그렸다. 경덕왕 대에 이르면 이미 지난날의 영화는 거의 스러져버리고 만다. 화랑의 풍류도를 대신해 불교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아가던 그때 월명사는 점차 왜소해지는 자신의 모습에서 인간사의 부침을 곱씹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야 하는 ‘낡은 인물’ 월명사는 그래서 쓸쓸히 피리를 불며 달밤을 배회했던 것이 아닐까.
최치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중국에서 쌓은 경륜과 새로운 지식을 맘껏 펼쳐보고 싶었을 것이다. 혼란한 국정을 수습하기 위해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진성여왕에게 올린 것은 그런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운수가 막히고 움직이면 문득 허물을 얻게 되었다.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며 다시는 벼슬할 뜻을 가지지 않았다”고 김부식이 썼듯 그는 결국 제대로 등용되지 못했다. 최치원 같은 선구적 지식인을 용납하기에 말기의 신라는 너무 썩어 있었다. 어쩌면 그를 알아볼 만큼 사회가 성숙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낡은 시대’를 살아야 하는 ‘새로운 인물’ 최치원은 그래서 쓸쓸히 산림에 은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월명사 : 생몰연대를 알 수 없다. 그에 대한 자료는 『삼국유사』,「월명사 도솔가」에 실린 몇몇 일화가 전부이다. 경덕왕(재위 742~764) 때 해가 두 개 나타난 변괴를 「도솔가」를 불러 물리쳤으며, 죽은 누이동생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제망매가」를 불렀다, 피리를 잘 불어 달조차 운행을 멈추게 했다 등등이다. 하지만 자신을 국선(國仙)의 무리에 속한 승려라고 밝힌다든가 신라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 세운 사천왕사(四天王寺)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통해 화랑집단에 소속된 낭도승(郎徒僧)으로 국가의 안녕과 관련된 일을 맡았으리라 짐작된다.

- 최치원 : 헌안왕 1년(857년)에 태어나 죽은 해는 알지 못한다. 12세에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 갔다.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해 율수현위(溧水縣尉)를 지내기도 했지만, 자신의 능력에 비해 턱없이 낮은 직위로 여기고 그만두었다. 중국에서 문명을 떨쳤지만 이방인의 한계를 절감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주변사람의 배척과 시기로 제대로 쓰이지 못해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쓸쓸한 말년을 보냈으며 가야산에서 여생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론 부분의 1,2,3은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중 월명사,최치원 부분인 “세상과 불화한 두 ‘천재’의 갈림길”을 정리한 것이다.)

Ⅱ. 본론

1. 월명사

1.1 시대적 배경 및 인물탐구

참고문헌
-정출헌-고미숙-조현설-김풍기 지음,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한겨레출판, 2006.
-최준옥 편, 『國譯 孤雲先生文集』 下, 학예사, 1982
-주류성, 『신라 최고의 사상가 최치원 탐구』, 한국사학회, 2001
-이구의, 『崔孤雲文學硏究』, 아세아문화사, 2006
-최영성,『譯註 崔致遠全集(2)』, 아세아문화사, 1999
-서영교, 『신라인이야기』, 살림, 2009
-황패강 외, 『한국문학작가론(1)』, 집문당, 2000
-이임수, “월명의 삶과 예술”, 『월명학술발표 논문집』,경주문화축제위원회, 2003
(“월명의 삶과 예술”은 논문명이기도 하면서 월명학술발표 논문집 제목이기도 하다.)
-박노준, “월명의 향가문학세계” 『월명학술발표 논문집』,경주문화축제위원회, 2003
-김완진, 『향가해독법연구』, 서울대출판부, 1980
-유해춘, “월명사의 향가문학과 그 배경설화의 연구”, 『어문론총』 제31호 ,경북어문학회, 1997.8
-최치원, 『桂苑筆耕』, 木活字本,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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