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 육당 최남선 -친일 반역자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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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작가소개

2. 시대 배경

3. 친일 반역자의 길

4. 작가활동 및 작품소개


ⅲ. 결론

1. 친일파로서의 최남선

2. 지식인으로서의 최남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1-2. 최남선의 생애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으며, 1904년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그해 도쿄 부립제일중학교에 3개월간 다니다 중퇴하였으며, 1906년에는 와세다 대학 고등사범학부 지리역사과를 역시 3개월간 다니다 동맹 휴학으로 중퇴하였다. 이어 이광수 등 유학생과 사귀면서 러시아 문학 작품을 탐독하였다. 이때 유학생 회보인 《대한 흥학회보》를 편집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시(신체시)와 시조를 발표하였다.
귀국한 뒤 신문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1908년 신문관을 창설하였다. 1908년 최초의 종합 잡지인 《소년》을 발행하였다. 그는 이 잡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를 발표하였으며, 이듬해 안창호와 함께 ‘청년 학우회’를 설립하여 청소년 지도 운동에 앞장섰다. 우리 민족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조선광문회’를 1910년 설립하였다. 1911년에 《소년》이 폐간되었으며, 이듬해《붉은 저고리》, 《아이들 보이》, 《새별》, 《청춘》 등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명령으로 모두 폐간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체포되어 2년 6개월 형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였으나 1921년 10월 18일에 가출옥하였고, 그 뒤 변절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총독부의 잡지 《동명》의 발행 자금 지원 하에 출옥 후, 《동명》지와 《시대일보》를 발간하였다.
1927년 ‘조선사 편수위원회’를 둘 때 편수 위원직을 맡음으로써 본격적인 변절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7년 중추원 참의를 거쳐 1938년 《만몽일보》고문과 일본 관동군이 만주에 세운 만주 건국대학에서 교수직을 역임하였다.
이로써 광복 후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며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수감되었으나 병보석으로 출감하였다. 하지만 그를 기소한 반민특위를 이승만이 친일파들을 정치적 목적에서 감싸면서 1948년에 해산됨에 따라 그의 친일행각은 사실상 처벌되지 않았다. 한국 전쟁 후 《서울시사》 편찬위원회 고문으로 재직하였고, 1957년 《한국역사대사전》을 편찬하던 도중 뇌일혈로 죽었다.

2. 시대 배경
한국 사회는 1910년 일본의 강점에 의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면서 그 이전에 추구해 오던 개화계몽운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된다.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폐지하고 한국에 대한 경제적 수탈정책과 한국민족에 대한 차별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한다.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함께 회사령을 선포하여 기업 활동을 강제 지배하고 토지 임야에 대한 조사 사업을 실시하여 한국인의 소유의 토지와 임야를 수탈함으로써 한국인의 경제적인 지위를 박탈한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 경영의 기초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 통감부를 통해 1906년 8월 보통학교령을 발표한다. 언론 출판에 대한 검열 정책도 강화한다. 신문지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언론 규제법을 만들고 출판법을 시행하게 했고, 여러 사회단체가 발간하던 기관지나 잡지는 모두 폐간한다.
한국 민족은 이러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여 국내외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저항 운동을 전개한다. 일본에 대한 한국 민족의 저항의식이 행동으로 집약되어 표출된 것은 1919년의 3.1운동이다. 3.1운동 이후 언론 활동을 통하여 민족계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고 이러한 언론의 계몽운동과 함께 민족교육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된다. 일본의 경제적 침략과 수탈에 대응하기 위한 민족의 경제자립운동도 이시기에 활발히 진행되고 민족운동 또한 3.1운동 이후 확대된다. 한국의 민족운동은 결국 한국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대항하는 다양한 반식민주의 담론을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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