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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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 조선시대 사화 이야기

1) 사화의 의미

2) 무오사화 : 배경 과정 결과 의의

3) 갑자사화 : 배경 과정 결과 의의

4) 기묘사화 : 배경 과정 및 결과 의의

5) 을사사화 : 배경 과정 및 결과 의의


3. 결론

본문내용
1) 사화의 의미
사화란 사림(史林)의 화(禍)를 줄인 말이다.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은 문을 숭상하고 유학을 장려함으로써 유림이 중심이 된 사회였으나 이들은 각자의 사상과 감정, 또는 지연 등을 연고로 하여 파벌을 형성했으며 서로 논쟁하고 대립, 투쟁하면서 서로를 반역으로 몰아 목숨까지 앗는 사화를 발생시켰다. 김인숙(2009), 『조선4대 사화』 , 느낌이 있는 책, 5쪽
조선 시대 연산군대에서 중종 대에 일어난 4대사화인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외에도 8가지의 큰 사화가 있었다. 우리는 사화 중에서 시대 순으로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무오, 갑자, 기묘, 을사사화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2) 무오사화
(1) 배경
무오사화가 일어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개인 간의 원한, 향촌사회로의 질서 확립 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에 따른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연산군과 삼사의 갈등이 그것이다.

① 개인 간의 원한
 김일손과 이극돈의 관계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김일손과 이극돈의 악연은 김일손의 과거시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일손이 과거시험을 볼 당시 이극돈은 장원이 거의 확정인 김일손을 2등으로 주저 앉혀버렸다. 김일손은 소과인 ‘사마시’도 합격하면서 이미 관리들에게 뛰어난 문장실력으로 이미 알려진 터였으나 이극돈이 김일손의 문장은 화려하고 능숙하기는 하나 과거시험의 일정한 격식을 지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2등으로 만들어버렸다. 또한 이극돈이 이조판서로 있을 때였다. 이조에서 낭청 좌랑과 정랑을 이르는데, 이는 인사권을 장악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이다.
을 뽑는 시기가 되었다. 모든 낭청들은 김일손을 추천했으나, 이극돈은 그가 홍문관으로 들어가야 할 사람이라면서 후보자 명단에 넣는 것을 반대했다. 김인숙(2009), 『조선 4대 사화』, 느낌이 있는 책, 17쪽
여기에 김일손은 그에게 좋은 마음만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김일손은 이극돈이 정희왕후가 상을 당했을 때에도 기생을 끼고 유람을 하는 등의 문란한 행위와 뇌물을 받는 것을 보고 그냥 넘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극돈의 행적을 사초에 적었다. 물론 강직한 성격의 김일손이 단지 사사로운 감정만으로 사초를 적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렇다고 해서 사사로운 감정을 아예 배제하고 썼다고 보기도 어렵다. 김일손의 이극돈의 행적을 사초에 썼다는 것을 알게 된 이극돈은 김일손을 찾아가서 “탁영(김일손의 호),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한 번의 실수를 사초에 기록해 놓으면 후대에 내 꼴이 무엇이 되겠나? 네 자네의 고마움을 잊지 않을 터이니 이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내용을 지워줄 수는 없겠나?”하고 부탁하였으나 김일손은 “아시다시피 사초는 임금도 볼 수 없거늘 실록청 책임자인 대감께서 소신에게 이를 지워 달라 함은 불가한 일입니다. 게다가 소신이 없는 내용을 만들어 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비행을 저질렀으면 참회를 하셔야지요. 그래야 후대의 벼슬아치들이 본을 삼아 언행을 삼갈 것이 아닙니까? 삭제를 하다니요, 차라리 제 목숨을 가져가시지요.”하고 대답하였다. 김인숙, 앞의 책, 16쪽
이때부터 이극돈은 김일손을 벼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8권 조선 중기 사림 세력의 등장과 활동』
김돈, 『조선 중기 정치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9.
김범, 『사화와 반정의 시대』, 역사비평사, 2007.
김인숙, 『조선 4대 사화』, 느낌이 있는 책, 2009.
신병주,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랜덤하우스, 2006.
이성무, 『조선왕조사 1권 건국에서 현종까지』, 동방미디어, 2002.
최범서, 『야샤로 보는 조선의 역사1』, 가람기획,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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